타잔을 꿈꾸며, 이진영 선생님 수필집 '나도 춤추고 싶다'
타잔을 꿈꾸며
‘타잔(Tarzan)’은 미국의 대중작가 E.R. 버로스가 쓴 소설의 주인공으로 시작되었다. 피부가 하얀 짐승이란 뜻의 타잔. 고릴라들이 쓰는 말이라고 하니까 고릴라들이 하는 발음은 좀 다르겠지만 사람들이 알아듣기에 타잔이라 들렸나보다.
타잔은 가족들이 탄 배가 항해 중 사고를 만난다. 타잔의 가족들은 간신히 살아남지만 부모님이 표범에게 희생되면서 타잔은 밀림의 고아가 된다. 타잔은 고릴라 ‘칼라’에게 구출돼 고릴라들과 함께 성장한다. 어린 타잔이지만 고릴라의 모습과 다른 자신의 모습이 고민이었으리라. 그런 어느 날, 타잔은 아름다운 영국 아가씨 제인을 만난다. 제인은 교수인 아버지와 함께 아프리카 여행을 왔던 참이었다. 그 후 타잔과 제인의 이야기는 영화와 TV드라마를 타고 널리 전해졌다. 어린 시절 타잔의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빠져보지 않은 이가 있을까.
타잔은 자연 속에서 자연을 사랑하고 산다. 자연을 파괴하고 자연을 물질화하려는 이들로부터 자연을 지키는 용사다. 그저 가릴 곳만 옷으로도 만족하니 명품 욕심도 접고 백화점 바겐세일 눈 빠지게 기다릴 필요도 없으니 얼마나 좋은가.
나뭇잎 얼기설기 엮은 오두막집에서도 행복하니 부동산 투기로 구설수에 오를 일도 없다. 앞뒤에 호수며 강물이 출렁이니. 수영장을 갖춘 호화로운 대저택을 꿈꿀 필요도 없고, 종부세 낼 걱정에 밤잠 설치며 뒤척일 필요도 없다. 가끔 악어의 추적을 받으며 수영을 즐기니 공포영화 보면서 가슴 오싹거리는 스릴을 따로 느낄 필요도 없다. 맨발로 달음질치거나 넝쿨 타고 날아다니니 비싼 외제차를 구입하거나 교통체증에 짜증날 필요도 없지 않나.
헬스클럽에 다니지 않아도 골프를 치지 않아도 나무 사이를 뛰어다니는 그의 몸매는 나무의 정기를 듬뿍 받아서 늘 푸르고 단단하고 멋있다. 더 높아지려고 아부하지 않아도 되고 더 낮아지지 않으려고 비굴하지 않아도 된다.
‘웰빙’을 외치며 유기농이다 무농약이다 가릴 필요도 없다. 밀림 속은 자연 순수 그대로이니 특별한 식이요법이 필요 있겠는가. 날짐승 알로 부침을 만들고 나무에서 직접 과일을 따다가 먹기도 하니 재미있을까.
으슥한 밤, 우거진 나무 사이를 헤치고 달빛이 그윽이 다가선다면 타잔은 아마도 숙연하게 마음 다듬고 고려 말 ‘나옹선사’의 선시를 읊었을는지도 모른다.
청산을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후락...
다스릴 대상 없이 자연 속에서 자연과 동등한 위치에서 함께 살아가니 치사하고 더러운 권력다툼도 필요 없을 터, 인간의 글과 말을 알지 못했고 자연과의 대화만을 터득했지만 불편함 없이 살았다. 오히려 그 순수하고 가식 없는 자연 속 대화가 그를 더욱 행복하게 만들었으리라. 그에게는 자연을 파괴하려는 이들로부터 자연을 지키려는 꿈과 야망 그리고 순수한 사랑만 있었다. 어쩌면 그는 자연과 분리되지 않은 하나, 즉 그대로 자연이었다. 그렇게 타잔처럼 살고 싶지 않은가?
정말 오래전 타잔을 꿈꾼 사내가 있었단다. 1985년 호주 경찰은 원주민 어보리진 인의 신고로 당시 35살 난 백인 사내를 체포했다고 한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으나 호주 대도시에서 회사원을 지내던 그는 도시생활에 진저리를 내 모든 재산을 정리하고 밀림으로(호주는 내륙이 사막과 밀림이다) 들어갔다.
악어에게 쫓기고 뱀에게도 쫓겼으나 차츰 밀림이 적응되고 거북이를 잡아 피를 마시고 물고기를 잡아 불을 안 피우고도 먹는 법 등을 익혔다. 처음에는 배탈이 나고 설사도 하고 고생을 하다가 몇 년 지나자 정말 타잔처럼 되었단다.
타잔처럼 줄타기 연습하다가 떨어져 다리도 삐고, 그러다가 원주민들 먹을 걸 슬쩍하다가 경찰에게 신고당해 잡혔다는 거다. 도시로 온 그는 이제 도시가 지겹고 밀림이 그리워졌다고 한다. 이후 경찰서를 탈출하여 밀림으로 들어가고 다시 경찰에게 잡히기도 했다는데, 그 사내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의 기억 속 타잔은 여전히 밀림 속 풀잎으로 지붕을 엮은 한 칸 띳집에서 사랑하는 제인과 한 벌 옷으로 만족해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으리라. 그러나 그처럼 타잔의 생활을 꿈꾸는 이들은 많지만 타잔처럼 살기란 쉽지 않을 듯하다. 편한 도시생활에 길들여진 이들이 잠시의 낭만적인 여가를 즐길 수는 있어도 다시 돌아가려 하기 때문이다. 한 번 맛본 권력의 힘이 당기고 한 번 걸쳐본 문명의 편리함이 눈에 아른거린다. 값비싼 차에 몸을 싣고 하이웨이를 달려본 이들이라면 넝쿨 타고 날아다니는 밀림생활은 권태로울지도 모른다.
빽빽한 밀림 속 같은 고층 빌딩 숲에서 피곤하고 상처 입은 그대들이여 가끔 타잔의 삶을 꿈 꿔보면 어떨까? 주위의 시선 따위는 무시하고 타잔처럼 짐승울음 같은 큰소리로 “아~~~아~~아~~~” 하고 한 번 소리쳐 보고 싶지 않은가. 순간, 갑옷이나 투구처럼 무겁게 걸쳐진 삶의 무장들이 ‘절그럭’ 소리를 내면서 그대 몸에서 흘러내리리라. 그런 후 넝쿨 타듯이 바람을 두 손에 잡고 달려보는 거야, 막힘없는 세상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