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은 영월에서 사약을 받고 승하했다.
그
후 많은 세월이 흘러서야 조정은 민심을 읽고
노산묘를 `장릉'으로 추봉했다.
새로 부임하는 강원관찰사로 하여금 장릉을
반드시 참배토록 한 것도
숙종 25년인 1699년의 일이다.
▼장릉을 찾는 관찰사 일행은 주천강을 꼭 건너야 했다.
주민들은 이들을 맞아 쌍섶다리를
놓아줬다.
며칠 후 돌아가는 길에는 주천에 머물러 섶다리 놓기에
수고한 백성들에게 곡식을 나눠주고 잔치를 베풀었다.
세조의 처사로 조정을 온당치
않게 여겨온 민심이
정상을 되찾게 된 계기였다.
영월 주천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는 노동민요인
`쌍다리 노래'에는 이런 단종의 애사(哀史)가
녹아있다.
▼동강 서강 평창강 등 유난히 강이 많은 영월지역의 섶다리는
나룻배와 더불어 유일하게 강을 건널 수 있는
교통수단이었다.
물에 강한 물버들나무로 만들었다.
`Y'자 모양의 나무를 거꾸로 박고 그 위에 소나무와 참나무를 얹어 골격을 세웠다.
다시
바닥에 솔가지를 깔고 흙을 다져서 만들었다.
못을 하나도 쓰지 않고 도끼와 끌만을 써 기둥과 들보를 맞추는 짜맞추기 공법이다.
지네발을 닮은
섶다리는 늦가을에 놓았다가 여름 장마철에는 떠내려가 사라진다.
이곳 관운리와 밤뒤 마을의 지명이 `미다리(未橋)'가 된
유래이다.
▼영월군은 19, 20일 이틀간 주천강과 서강변에서 `섶다리 잔치'를 연다.
도 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은지
20년만이다.
고향의 향수와 전래풍속을 되살리고 고장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섶다리 잔치'를 열기 시작한지는 이태
째이다.
올해는 주천강변에서 강원관찰사의 부임 장면이 재연되고 쥐불놀이와 전통혼례 등
다채로운 볼거리와 놀거리가 기획돼 벌써부터 관심을 끈다.
곳곳에 현대식 교량이 들어서 이제는 추억속에 묻혀 버린 섶다리가
한폭의 동양화처럼 되살아난다.
전국 유일의 `다리(橋)잔치'가 영월의 독특한
전통으로 다가온다. <金吉昭논설주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