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역사 유적

김상태의병장 충절사, 충절비

心 鄕 2014. 6. 1. 10:40

 

첨부파일 김상태의병장 충절사.충절비.hwp

 

김상태의병장 충절사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
관리번호 17-1-2
소재지 : 하동면 옥동리 162(현 김삿갓면)
관리자 : 영월군
김상태의병장은 1862년 단양군 영춘면 남천리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 일가친척이 많이 살고 있는 하동면 옥동리로 이사하여 33세인 1895년 을미사변 이후부터 영월 덕포전투, 영춘 석벽전투, 문경 갈평전투, 영주 죽령전투 등 수많은 의병활동에 참여하였으며, 1911년 일본군 밀정의 신고로 체포될 때까지 혁혁한 공을 세웠다.


체포된 이후에는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었으나 일본인이 주는 음식을 거절하고 옥중단식을 벌이다 단식13일만에 순절하니 향년 50세였다.


이 고장에 의병장이 살던 집터가 남아있고 또한 문중에서 건립했던 ‘충의사’라는 사당이 있었던 이 터에 삼척김씨 종친 등이 주축이 되어 김상태의병장 충절사를 건립하였다.
 -자료 : 현지 안내 설명 표지판-


김상태의병장 충절사
위치 : 강원 영월군 김삿갓면 옥동리 162
건립취지 : 김상태는 충북 영춘 남청(永春 南川 혹은 東面) 출신으로 1차·2차 의병전쟁에 모두 참여하였다. 1차 의병전쟁 때, 김상태는 1896년 이강년이 문경(聞慶)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형제지의(兄弟之誼)를 맺고 그 휘하에서 중군장(中軍將)으로 활약하였다. 호좌수(湖左帥) 유인석(柳麟錫)이 영월(寧越)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이강년과 함께 유인석 의진에 가담하여 싸웠다. 유인석이 만주로 망명하자 김상태는 이강년과 함께 유인석을 따라가 섬기다가 3년 뒤에 귀국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김상태는 동지 정운경(鄭雲慶)과 함께 제천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며 1907년 이강년의 의진과 합세하였다. 1907년 7월 이강년은 40여진을 주천(酒泉)에 모아 회맹하고, 도창의대장(都倡義大將)에 추대되었다. 1908년 이강년이 체포되자 그의 군사지휘권을 인계 받아 단양(丹陽)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그러나 적의 세력이 더욱 치열해짐에 의병을 이끌고 소백산중으로 들어가 계속하여 유격전을 전개하였으며 일헌병과 교전한 것이 무려 50여 회에 달하였다. 이와 같이 저항운동이 끊임없이 지속되자 총독부는 그에게 상금 오백금(五百金)을 걸고 체포에 혈안이 되었다. 그 돈에 눈이 먼 종사 우중수(禹中守)가 그를 배신하여 고발하였으며, 그는 국내 순흥 남목리(順興 南木里)에서 적에게 체포되어 대구경찰서로 압송되었다. 3차에 걸친 심문 끝에 그는 감금 삼년형을 선고받았다. 의분을 참지 못한 그는 순사의 칼을 빼앗아 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러자 "적의 손에 욕보느니 차라리 자처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단식을 하여 단식 13일째인 1912년 7월 28일 옥중에서 순절하였다. 그의 시신은 유언에 따라 주장(主將) 이강년의 무덤 곁에 반장(返葬)되었다가 1984년에 제천시의 "의병묘역성역화계획"에 의거 제천시 고암동 ‘의병골’에 이장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자료 : 국가보훈처http://www.mpva.go.kr/open/open300_view.asp?ipp=10&id=21512

 

 

 

 


순국 김상태의병장 충절비
     국가보훈처지정 현충시설
관리번호 17-1-1
소재지 :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금강공원 내
건립자 : 삼척김씨 종친회
관리자 : 영월군

김상태(1862~1911)의병장은 삼척 김시로 1862년 단양군 영춘면 남천리에서 태어났으며 영월군 하동면(현 김삿갓면)옥동리에 이사하여 살았다.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 단발령이 내려지자 울분을 참지 못하여 의병을 모집하여 이강년(李康年)의병장과 손잡고 중군장이 되어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유인석(柳麟錫)대장의 휘하로 합세하여 경상, 충청, 강원 3개도에 걸쳐 일군 수백명을 무찔러 의병사상 빛나는 공적을 세웠다. 이강년, 민긍호 두 장군이 1908년대에 모두 사로잡혀 처형되자 이후 3년간 수천명의 부하를 홀로 통솔하고 일군과 싸웠다.
일본관헌은 혈안이 되어 장군의 검거에 노력하였으나 신출귀몰하여 일군의 포위망을 뚫고 대항하다가 1911년 6월14일 오전1시 풍기군 단산면 광암리 소백산 기슭에서 일본군 밀정의 제보로 체포되어 동년 9월21일 대구형무소에서 순절하니 향년 50세였다.
김상태 의병장 충절비는 삼척김씨 종친회가 주축이 되어 1998년 3월15일 이곳 금강공원에 세워졌다. -자료 : 현지 안내 설명 표지판-

 

순국 김상태의병장 충절비, 영월 현충시설
위치 : 강원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금강공원내
건립취지 :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단발령이 반포되자 1896년 영월에서 의암 유인석 선생의 권유로 의병진에 가담하기 시작하여 1907년 고종황제가 강제로 퇴위되고 군대가 해산되자 의분을 참지 못하여 정미의병에 참여, 호좌창의군의 중군장이 되어 영월 덕포, 영춘 서벽, 문경 갈평, 영주 죽령 전투에서 무수한 공을 세웠으며, 1908년에는 대장군이 되어 1천명의 의병을 이끌고 영월, 영춘, 순흥, 문경, 원주 등지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음.
자료 : 국가보훈처 http://www.mpva.go.kr/open/open300_view.asp?ipp=10&id=2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