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역사 유적

1919년 4월21일 금마리 만세현장

心 鄕 2004. 10. 29. 18:30

1919년 4월21일 ,주천 장날을 기하여 박광훈 외 만세 주관자들은 마을주민을 모으기 시작했고,

당시 마을을 방문한 영월군수 석명전과 부하 2명이 주민에게 만세 반대명부에 서명할 것을 요구하자,

박수창은 이를 완강히 거부하면서 군수일행을 주민앞으로 끌고가 만세 연명부에 서명하게 한 후,

태극기를 들려 힘차게 만세를 부르도록 했다.

이로인해 69명이 검거되었고 ,17명이 옥고를 치렀으며 탁원근은 옥중에서 숨졌다.

이와같이 암울한 시기에 조국의 독립을 갈망하여 감행했던 선현들의 숭고한 애국 독립정신을 함양하고자

신일리와 금마리 사이인 고개에 1992년 7월, 4천 5백 20평의 부지에,

폭 1.5m, 길이 3.2m의 화강암 밑받침에 높이 4.55m의 청동 조형물을 세웠다.(사업비 1억 8천여 만원)

1993년 3월부터 금마리 만세운동 현장에서 제막식을 거행해 후세들에게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매년 3월 1일, 당시의 애국정신을 후대에 전하기 위하여, 마을 어른들과 후손들의 고증을 바탕으로

당시를 재현하는 실화극을, 현장에서 진행하여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만세현장과 기념비는 금마리재 아래 마을 한가운데 있다.

*자료인용 : 영월술익는마을홈-문화유적코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