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역사 유적

[스크랩] 주천초교 방과후학교 기자반, 영월 주천의 문화유산 탐방_의호총을 찾아서

心 鄕 2010. 5. 13. 10:40

 

 

봄의 바람이 아침은 차갑고 낮은 따뜻하니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할까 걱정하는 날들입니다만

논에서는 모내기가 시작된 5월의 12일 수요일 입니다.

 

오늘은 주천초등학교 방과 후 학교 어린이 기자반 수업이 있는 날 입니다.

준비된 학습 자료를 저장기에 담아 면사무소에서 프린트를 했습니다. 서체를 13pt로 하니 3매 불량이고 종이를 줄이기 위해 10pt로 조절했더니 2장으로 줄어들어 양면으로 복사를 하니 딱 1장으로 충분하여 아이들이 10명이고 1부는 자료집에 보관을 해야 하니 총 11부를 준비했습니다.

매주 면사무소에 큰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도 충분히 자료 준비를 할 수 있지만 매일 다가서는 면사무소가 편안해서 주에 한번씩, 때로는 분량이 많을 때도 있어 공공용 재산을 사용하니 미안한 마음도 듭니다.
 

 

 

 

6학년 땡땡이 3명 빼고 일곱 명이서 가까운 거리에 의호총이 있으니 걸어가기로 했습니다.아이들에게는 조금은 무리이겠지만 걸어야만 주변을 볼 수 있고 변화되는 계절을 체감할 수 있으니까요.

 

역시나 변하고 있었습니다. 20억원이 소요된다는 술샘건강복지센터는 어느덧 착공하여 지하층 콘크리트까지 타설되어 있었고 산뜻한 그림의 조감도가 붙어 있었습니다. 

가을 쯤에 완공되면 목욕탕과 건강증진용 기구들이 구비되고 여러 형태의 사랑방도 꾸며진다니, 어른아이 구분 없이 모두에게 참 좋은 시설이 되리라 봅니다.

 

    

 

 

 

옛 모습 그대로인 돌담길을 지나 제방 둑으로 나가니 망산은 푸르게 변했습니다.

수량이 많아진 주천강은 쉼 없이 흐르고 세상에서 세상으로 건네주는 섶다리는

그 자리 그대로 자리를 지키면서 아득한 먼 옛날 조선시대의 관리들이 단종대왕에게 참배와 제향을 위해 건너던 모습을 떠오르게 합니다.

 

참으로 슬픈 사연입니다.

살아생전에 존중해 주지 못하고 열일곱 어린나이에 사약을 받아 죽게 하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왕으로서 예를 다하여 제향을 올리고 참배를 하다니,

극과 극을 이루는 야릇한 사연을 건네주고 받는 섶 한 다리입니다.

 

망산의 빙허루는 무성하게 자란 주변의 나무들이 가려 보이지 않지만

지례짐작으로 `저기쯤 일거야`

훤하게 보일게 할 수 없을까를 생각하면서 다리를 건넙니다.

 

다리의 인도에는

꽃으로 장식된 화분이 끝에서 끝에까지 붉은 꽃으로 단장되어 있고

지나는 길을 강의 바람이 전해주는 향기가 반겨줍니다.

 

다리건너 둑길로 접어들면서 강 건너편에 있는 주천 시내를

모두 어깨동무를 하고 바라다봅니다.

내가 살고 있는 고향,

나를 성숙하게 해주는 부모님과 이웃 그리고 정다운 친구들이 함께 살고 있는 마을을 보면서

미래에 대한 꿈을 키우는 것 같습니다.

 

 

 

신일리에서 내려오는 작은 도랑은 갈대로 우거져 건너는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옛길은 있었는데 욕심으로 없어진 길을 걸어갑니다.

신발이 물에 젖고 작은 풀벌레들이 몸에 달라붙으니 소리소리 지릅니다

^ 흐~농촌마을에 살면서도 풀벌레에 놀라다니~오늘은 좀 훈련을 해야 되겠구나" 혼자서 중얼거렸는데

가만히 지켜보니 신이 난 아이들은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얼굴은 잔뜩 웃으면서도

소리소리를 지르며 놀란 척!~ 도시 아이들의 흉내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의호총으로 가는 길에

이번에는 입구의 길목을 지키면서 으르렁 거리는 커다란 개를 만났습니다.

용기 있는 아이한명이 크게 나무라니 꽁지를 내리고는 뒷걸음을 칩니다.

"호~ 대단했어!" 한마디 해 주었지요.

 

 

 

의호총의 역사는 숙종대왕의 시대로 올라갑니다.

`금사하`라는 분과 인연이 맺어졌던 호랑이는 숙종대왕이 승하하게 되자 망산에 올라 한양을 향해 3년 상을 지내는데,

밤낮으로 옆에서 지켜준 호랑이 이었다고 의호총 묘비명은 말하고 있습니다. 

전면에는, ‘義虎塚(의호총)’

후면에는,‘癸亥七月日因巡營分付立(계해칠월일인순영분부입)/

           故今虎士師康熙(고금호사사강희)/

           庚子崩有虎終喪三日而死(경자붕유호종상삼일이사)`라고 세겨져 있습니다.

 

`영월 땅 이름의 뿌리를 찾아서`에서 저자인 엄흥용 선생은,

"『1743년 계해 7월에 순영(조선조 정3품의 외관직으로 각도 관찰사를 보직하던 관원)의 분부에 의하여 세웠으며 ,

금처사 사하가 1720년(康子)에 국상을 당하여 호랑이와 같이 3년 상을 마쳤는데,

그 호랑이가 3일 후에 죽었기 때문이다』로 해설을 하고 있습니다.

 

의로운 호랑이에게 예쁘게 예를 올리는 아이들을 보면서,

존경하는, 존중해야할 인물과 유적, 사물에 대하여 예를 다 했는가?

뒤돌아보게 합니다.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초가집 같은 곳집에 대하여, 호랑이 상과 상옷을 입은 인물상에 대하여, 금사하의 묘는 어디에? 등으로,

매우 궁금해 하는 사안들을 답을 해 주었습니다.

 

또 다른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려주었습니다.

"옛날에 호랑이 묘비명이 세워져 있을 때 강 건너편에 있는 개들이 밤마다 울부짖어 원인을 찾았는데요,

의호총 묘비석을 자빠뜨려두었더니 그날 밤부터는 개들이 짖지를 않았다" 는 이야기 이었습니다.

 

살아서도 개들에게는 두렵고 무서운 존재였는데 죽어서도 같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호랑이에게서

한 번의 만남으로 심어진/굳어진 인상/느낌은 변하기 어렵기에

매사에 정성과 성의를 다하는 노력이 필요함을 말해 주었습니다.

 

 

학교로 되돌아오는 길이 좀 아니 매우 불편했습니다.

주천2교를 건너야하는데 사람중심으로 안전이 확보된 인도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대형차량과 승용차들의 빠른 주행으로 바람에 의한 쏠림 때문에 몸을 웅크려야 했고

부지런히 건너자니 길이는 너무도 길었습니다.

 

꽃잔디가 예쁘게도 무리지어 피어있는 주천초교의 교정이 아름답습니다.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 피고 나도 꽃 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나 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냐고도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라던 `조동화 시인의 나하나 꽃 피어`가 떠오릅니다.

 

함께하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해낼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서로 돕고 예와 신의로 사람존중 가치존중에 애를 쓴다면

아름다운 지역사회, 멋진 풍경이 있는 마을로 변화되지 않을까요?.

 

 

 

 

 

아이들에게는 어릴 적 추억들이 재산이 됩니다.

그 하나하나로 삶의 버팀목이 되고 자신을 되돌아보며 올바르게 살아가는 지표가 되기도 합니다.

고향이 너무도 소중하고 오늘이라는 유년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지금의 어린이들이 이 땅의 주인이자 자산이기에, 어른으로서 어린이들에게 해야 할 일은 마음껏 뛰어놀고 마음껏 공부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 역할에 충실한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를 대신할 이 고장의 미래인재들이니까요.

 

 

출처 : 주천 강 문화센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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