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내린 비는 정녕 봄비였습니다.
숲길로 들어선 나를 붙잡는 것은 오래 묵은 소나무 껍질과 수없이 많은 도토리 열매를 매달았던 참나무 굴피에도,
새로운 생명수를 선물하여 한층 더 생기 넘치는 숲으로 변하고 있었습니다.
새로이 조성된 한반도지형 탐방 길을 걸으면서
성큼 다가온 봄을 알게 하는 이야기들을 숲은 말하고 있었습니다. 어제 내린 비는 봄을 키우는 비였다고.
입구에서부터 시작되는 가파른 길을 따라 오르면,
헐떡거릴 여유도 없이 시원하게 내려서야만 하는 계단과 넓은 분지가 눈에 들어옵니다.
산자갈 더미로 이뤄진 평평한 분지에, 들꽃이 피어나게 꽃씨라도 뿌려야 되겠습니다.
가을이면 하얀 꽃으로 온 몸으로 흔들면서 반겨 줄 구절초 꽃씨를,
봄이면 그 누구보다도 먼저 피어나 하얀 다리를 치켜들고 목이 빠져라 기다리던 임을 만난 듯
더욱 하얀 얼굴로 방긋 웃어줄 꿩의 다리 바람꽃을,
무더위가 시작되는 초여름이면
노란 꽃으로 온 세상을 물들일 금계국 꽃으로 숲길 지나는 길목마다 피어나게 하고 싶습니다.
함께 뿌려줄 그 누군가만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탐방 길이었습니다.
시작에서부터 천천히 관찰하면서 걸었던 길은,
30여분이 지나니 한반도 지형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내려다보이는 서쪽에는 떠나기 싫어하는 잔설이 남아있고,
동쪽으로는 봄을 준비하는 농부들의 밭갈이가 바쁘게 움직입니다.
북쪽으로 솟아오른 시멘트공장의 높은 굴뚝은,
마치 북한지역이나 중국이 산업사회로 전환되는 모습을 보는 듯 하얀 연무가 하늘높이 오르고 있습니다.
어제의 봄비 내린 날에 이어진 오늘입니다.
하늘에서는 금방이라도 봄을 내려줄 듯
무언가를 준비하는 모습에서
나는 이 봄을 위하여
어떻게 마음을 가다듬고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는 있는 건가
머물지 못하는 바람처럼
준비 없는 마중은 정처없이 떠도는 구름이지만,
기다리며 기다리며 자율로 준비된 만남은
참다운 인연을 소중하게 여겨,
눈으로 말하고 가슴으로 주고 받는
말 없는 대화를 끝없이 나눌 수 있으니,
마주보고 있기만 해도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됩니다.
시샘하는 찬바람이 불어 닥쳐도,
기다리고 기다리던 봄이 오고 있습니다.
올바른 만남을 준비한 다짐 앞에서는
온 몸을 얼어붙게 하는 혹한이 밀려와도
기꺼이 감내할 가치가 있는 기다림입니다.
꽁꽁 얼어붙은 땅에서도
푸름을 간직한 올곧은 풀 한 포기는
내를 바라보며 그리 살라 합니다
봄으로 가는 길목에서 마주친 바람소리
어디쯤엔가 다가왔을 아름다운 풀꽃은
가느다란 세월의 끈을 길게도 부여잡고
몸부림치는 갈망을 몸으로 익히는
숲속의 이야기 들려옵니다.
출판일 : 2011.03.02 11:08 인빌뉴스홈 > 인빌소식 > 강원 영월 술빛고을 | 기행/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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