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기고문

잊혀져 가는 문화, 사랑과 사랑방

心 鄕 2012. 5. 22. 21:45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을 정리하면서 자기만의 이론을 정립하고 실천을 위한 마음다짐을 준비하는 과정이라 봅니다.

누가 보든 아니 보든, 있든 없든 간에 자신을 돌아보고 다독이면서 스스로를 위로하지요.

 

반성을 바탕으로

조금이라도 더 만족스러운 삶을 만들자는 자기최면일수도 있으니 시간이 쌓이면 몸에 익게 될 것이고,

그리되면 어느 분을 만나든 편안함을 주고받을 수 있으니까요.

사랑하기에 공경하는 이 옆에 있으면 그이만의 향기에

굽어진 허리 서로 기대어 서로를 지켜주는 청령포 노송을 만나면

마음을 맑게 해주니 곧 평안이지요.

 

사랑이라는 말과 “사랑해” 라고 반복하는 말은,

평안을 위한 마음다짐을 실천으로 나타내는 공경이었으니,

이는 조상님의 지혜로운 삶 중에서 사랑방이 그 뿌리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랑방이란,

사람을 사람답게 다듬으려는 옛 어른의 안배이자 배려이었다고 봅니다.

현실에서는 아무리 말로 하고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리면서 훈육을 해도

몸 따로 마음 따로 인 것이 사람이니 한 번 더 자각하게 하는 안전장치는 아니었던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사랑방이라는 의미에 대하여 여러 자료에서 말하기를...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안의 어른이 언제 오실지 모르니 군불을 지펴 늘 방을 따뜻하게 하고,

 아랫목에는 밥 한 그릇 이불에 묻어두고,

대문 밖에서 헛기침 소리 들리면 얼른 나가서 예를 다하여 맞이하던 옛 어른들의 손님맞이 이었다 합니다.


내 집에 오시는 손님은

오래전에 내 집의 주인, 어른, 나의 조상이 이제야 본집으로 찾아오셨다는 개념으로 사랑방에 모시고는

삼시 세 끼. 뜨신 밥에 조금도 불편함이 없도록 지극정성으로 모시는 것 이었지요.

그것이 사랑과 사랑방의 진정한 의미이었다고 이해하게 됩니다.

 


사랑방의 문(門)에 대한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문(門)이 좀 작아서 허리를 굽히지 않으면 아니 되게끔 높이를 낮게 만든 특징이 있었습니다.

뻣뻣하게 서서는 들어설 수 없는 구조. 여기에도 어른들의 지혜를 알게 합니다.
방문을 열고 들어설 때와 나갈 때는 반드시 고개를 수그려야만 하는 구조.

 

바로 인사이었지요.

문지방 또한 높았으니 방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두 발을 모은 다음 천천히 들여디디고 내어 디뎌야 하고

도포자락 발에 밟히면 넘어지게 생겼으니 좌측 손은 옷깃을 여미면서 아랫배에 손을 대어야 했으니,

그야말로 예를 다하여 인사를 드리지 않으면 아니 되는 구조이었지요.


그러한 일상이 3개월이 지나고 3년이 지나 세월이 흐르면서 습관이 되었으니

어느 집을 가든 문고리를 붙잡고 조심스럽게 고개 숙여 발을 디디니

방안에 누가 계시든 아니 계시든 자연스럽게 인사를 하게 되는 것이었지요.

 

그러고 보면 집안의 어른인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언제나 사랑방에 계셨으니

 아침에 일어나 문안 인사를 여쭙고,

어디를 갔다 오거나 학교를 갔다 오면 꼭 인사를 드리던 사랑방이었지요.

 

얼마나 말을 안 들었으면 그랬을까요?
얼마나 속을 썩였으면 아예 억지로라도 고개를 숙이도록 구조적으로 그리 했을까요?

 

시대는 변하여 바닥용 문틀이 아예 없거나 바닥과 같아 발끝에 걸리지 않으니 넘어질 일이 없고,

방문의 높이도 높아 고개를 숙일 일도 없는 구조이지요.

 

이제는 사랑방도 없으니

사랑방에 담진 옛 어른들의 안배도 잊혀진 문화가 되고 있습니다.

공경할 줄 알고 존중할 줄 아는 준비된 인물로의 훈육!

저 혼자만이 생각하는 사랑과 사랑방 그리고 사랑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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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일 : 2012.05.22 15:16 김원식기자 (dw-carpos@invil.org) / 기자주소 http://reporter.news.invil.org/dw-carp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