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군수 전벽 선정비(郡守 田公 闢 善政碑)
● 시대 : 조선시대
● 위치 : 영월읍 방절1리 산7임
● 문의 : 영월군문화관광 1577-0545
● 비문(碑文) : 郡守田公闢善政碑 군수 전공 벽 선정비
뒷면 : 順治十七年七月日 순치 17년 7월 일
영월소방서에서 청령포 방향의 포장도로 언덕 우측에 ‘생육신 어계조려선생사적비’ 가 있는 어계비원 오르는 길목에 위치한다.
석회암질의 비에 높이 118cm, 너비 44.5cm, 두께 20cm 이다(영월지역 누정·충효각 조사)
석회암질의 비에 높이 125cm, 너비 37cm, 두께 17cm 이다.(영월땅이름의 뿌리를 찾아서)
전벽(田闢)의 호는 서정(西亭), 자는 자서(滋墅)
영월부 선생안(先生案) 기록에 따르면, 선조24년(1591년)에 영월군수로 부임하여 1593년 6월까지 재직하였다.
보령현감으로 있을 때도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의 칭송이 높았다.
이괄의 난 때 군사 3천을 거느리고 인조임금을 공주(公州)까지 모셨다.
전벽은 선조 39년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이해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나 나이가 어리고 학문이 미급하다 하여 스스로 벼슬을 하지 않고, 고향에서 독서에 전념하다가 광해군4년(1612) 정자에 임명되었다. 인조 5년(1627) 정묘호란 때에는 전향종사관으로 참전하였다. 예빈사정에 이르렀으며 74세에 죽으니 좌승지로 추증되고 평양 송호사에 제향되었다.
■ 참고문헌
● 영월군, 1995, 《영월 땅이름의 뿌리를 찾아서》
한림대학교박물관·강원도·영월군, 1995,《영월군의 역사와 문화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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