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대로 글쓰기

인민재판의 역사에 기다림도 익숙해

心 鄕 2008. 9. 10. 21:16

지난 1950년대 6.25전쟁 과정에서 인민재판에 대한 옛 역사를 듣고,글로 접하는 기회가 있었다.

 

밀려오는 인민군을 피해 산골짜기 골짜기로 숨게 된 남자들에게

아내와 어미는 인민군의 눈을 피해 식량을 전달해야만 했다.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공포에 떨게 했던 것은,

권력의 실세에 빌붙어 자신의 안위와 영달을 위해 뒤 따까리 노릇을 했던 인물 때문이었다.

 

남편이, 아들이 몸을 피해 있는 곳의 뒤를 밟아 알아내고는,

벌건 대낮에 많은 주민들을 불러 모아놓은 자리에서 위해를 가하고,

영월로 이송되는 중간에 무참히도 살해되는 지난 역사가 있었다.

 

그렇게 가슴 아픈 일들을 주저 없이 진행한 사람들이 누구인가?

바로 함께 살고 있는 이웃이었다.

너와 나가 함께 잘 살기위해 서로 돕던 평화로운 마을에서,

어느 날 갑자기 찾아든 인민군이라는 권력 앞에는 대화가 필요 없었으며, 상식이 통하지 않았다.

 

따까리에 열심이던 이는 현재의 권세가 영원할 것이라 믿었겠지만 불과 한 두해 사이에 세상이 바뀌고 말았다.

아픈 상처들뿐인 주민에게는 길고 긴 세월이었지만,

언제나 그러하듯이 지난 세월에 뭔 일이 있었던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봄이 오고 여름 가을이 찾아오듯이,

남아있는 것은 자리를 지켜야만 하는 사람과 내 고장 내 마을 그리고 상처들뿐이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요 누가 먼저라고 말 할 필요도 없이 세월에 빌붙던 당사자를 재판하는,

소위 인민재판이 진행 되었다.

권력에 기대어 끗발을 부리던 자의 뒤 사연을 말로 해서 무엇하랴

 

세월이 많이도 지났다.

비슷한 일이 몸으로 느껴오면 긴장하게 된다.

지난 역사에서 경험을 했었기에 무언의 압력과 권세에 감히 대항할 수 없음을 충분히 알고 있고,

세월이 바뀌어도 같이 살아야할 이웃이기에  불편한 시기가 지나가기만을 바라면서

자신이 직접 관련된 사안이 아니면 애써 모른 척 하려는,

여유와 참회의 기회를 주는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권한을 남용하고,

개끝발을 부리는 이의 시대가 지나면,

또다시 인민재판이 진행될 것을 알기에

그 때가 반드시 찾아오기에,

기다림에도 익숙해 있다.

 

말없는 민심은 치우침이 없이 중심을 잡고

눈과 가슴으로 아픔을 말하나

권세에 도취되어 이를 읽지 못하니

지금 이 시대에 왜 또 뒤 돌아 보아야 하는지

알 수없는 심사에 착잡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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