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희 강릉시장의 기고문
[강원포럼]허난설헌, 420주기의 봄
강원일보 2009-4-14일자. 오피니언
http://www.kwnews.co.kr/nview.asp?s=1101&aid=209041300035&t=
강릉의 경포호수 저편에는 허난설헌 생가터가 있다.
고독과 파란의 천재시인 난설헌 허초희(許楚姬)가 이 땅을 다녀가신 지 420주기가 지났다.
조선중기 봉건사회에서 자신의 이름과 호를 당당히 사용했고, 시문으로 국제적 명성을 떨쳤던 대문장가였다.
난설헌은 조선의 유명한 문장가 초당 허엽 선생의 딸로 태어나 어릴적부터 글재주가 뛰어났으며,
당대 석학들인 형제들과 함께 손곡 이달에게 시를 배웠다.
열다섯에 혼인한 후 두 명의 자식을 먼저 보내면서 그녀의 삶은 비애와 한에 묻혀버리게 된다.
그러나 특유의 애상적 시세계를 이룩한 난설헌 문장은 우리 역사상 최초의 ‘국제적 베스트셀러 작가’로 평가받았다.
명나라 사신 주지번은 허난설헌의 시를 보고 “빼어나면서도 화사하지 않고, 부드러우면서도 뼈대가 뚜렷하다” 감탄하며
1606년 중국에서 ‘난설헌집’을 출간하였다.
또 그의 시를 연모한 명나라의 한 여성은 소설헌(小雪軒)이라 이름 짓고,
난설헌 시에 일일이 화답하는 시문 123수를 엮은 ‘해동란(海東蘭)’을 출간하는가 하면,
1711년에는 일본에서까지 ‘난설헌집’이 간행되었다.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스며들고
푸른 난새는 채색 난새에게 기대었구나
부용꽃 스물일곱 송이 붉게 떨어지니
달빛 서리 위에 차갑기만 하여라.
마치 자신의 짧은 삶을 예견이나 한 듯 이 같은 시를 남기고 스물일곱 붉은 꽃송이처럼 지고 말았다.
주어진 시대의 모순에 순종하지 않고 비극적인 삶의 단면을 예술로 승화한 난설헌의 글들은
다소 몽환적이거나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허균은 “누님의 시와 문장은 모두 하늘이 내어서 이룬 것”이라고 극찬했다.
400여년의 세월이 지난 1999년 강릉의 뜻있는 문인들에 의해 선양사업회가 발족되고
제1회 허균·허난설헌문화제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10여년 동안 척박한 향토문화를 일궈낸 예술가들의 땀에 의해 문화제는 빛과 깊이를 더해갔다.
그들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올해 2009년의 봄.
마침내 ‘허난설헌문화제’로 재조명받기에 이르렀다.
지난 10일부터 14일까지의 추모행사는
학술포럼, 체험행사, 들차회, 백일장, 시낭송회 및 솔밭음악회, 헌다례 등 다채롭게 펼쳐진다.
물론 지나온 세월이 긴 만큼 해야 할 일도 많을 터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근래 난설헌을 재평가하는 책들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허난설헌평전’을 비롯, ‘붉은 비단보’, ‘그곳에 가면 그 여자가 있다’, ‘스물 일곱 송이 붉은 연꽃’ 등
평론에서 시, 소설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넘나든다.
또한 다양한 문화콘텐츠로도 시도되고 있다.
극단 ‘씨어터21’에서 ‘아! 난설헌’이라는 창작극을 공연했는가하면,
뮤지컬 작곡가가 오페라음악을 작곡하기도 했다.
한 공방에서는 난설헌시문이 적힌 부채를 만들어 한국관광기념품공모전에서 큰 상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시도들이 지속적으로 이뤄진다면
문화의 세기를 건너는 우리에게 새로운 별빛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강릉시에서는 그동안 생가터를 정비하여 문학기념관을 만들고 시비공원을 조성하였다.
앞으로 초당의 울창한 숲을 솔밭길 산책로로 단장하는 한편,
경포호와 잇닿은 곳에 생태습지를 조성하여 생태탐방이 가능하도록 할 예정이다.
또한 옛 경포팔경의 정취를 되살려 문학답사코스가 되도록 콘텐츠를 구축,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고루 융합을 이룰 수 있도록 조성할 계획이다.
이제 오랜 세월 추운 겨울의 역사에 계셨던 허난설헌을 한국문학사의 큰 인물로 재정립하고자 한다.
어느 선사가 말하기를 “뼛속에 사무치는 추위없이 코끝을 찌르는 매화향기를 얻을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아무도 가지 않았던 그래서 더 처절하게 고독한 세월을 보냈던 난설헌의 생가터에 새봄의 볕이 들고,
매화꽃 붉은 기운에 생기가 돈다.
이번 주말, 역사가 숨쉬는 강릉 땅으로 초대한다.
경포호변에 한창인 벚꽃길은 또 다른 선물이다.
최명희 강릉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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