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깍두기', 이진영 선생님 수필집 『나도 춤추고 싶다』

心 鄕 2009. 10. 11. 10:51

'깍두기', 이진영 선생님 수필집 『나도 춤추고 싶다』


깍두기

 

난 깍두기였습니다.
어린 시절 언니들과 뒤란에서 공기놀이며 널뛰기를 할 때도,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줄넘기며 고무줄넘기를 할 때도 언제나 깍두기였습니다. 편을 가를 때 짝이 하나 남을 경우나 지나치게 잘해서 이편저편 갈라 넣기에 아까워 양쪽 다 넣어준 친구를 깍두기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나는 뭐하나 잘하는 게 없으니 이편에 넣어주기도 그렇고 저편에 넣어주기도 그렇고 해서, 그렇다고 안 끼워주자니 섭섭해 할 거고 또 도리가 아닌 듯싶어 이쪽저쪽 다 뛰라고 깍두기라고 이름 지어 주었습니다.
어쩌다, 정말 어쩌다가 고무줄이나 오자미 치기에서 이쪽 편에서 곧잘 뛰는 일이 생기면 간혹 저쪽 편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했었지요. 그러나 내 뛰는 모양새가 그리 날렵하지도 못하거니와 승부욕이 없어 악착스럽게 달려들지도 못하니 양쪽을 다 뛴다한들 그리 크게 기대할 바도 못 되었습니다. 거기다 한 수 더 떠서 반짝이는 에나멜 구두에 나풀거리는 공주 풍의 원피스를 입혀 놓았으니 마음껏 뛸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이편도 저편도 아닌 깍두기라는 이름의 내 마음 속 자각을 잊지 않았다는 겁니다.


오늘도 난 깍두기입니다.
친구 부부들끼리 가는 나들이에 꼭 끼워줍니다. 소속이 없는 존재, 그러나 끼워주지 않으면 안쓰러운 존재로서 깍두기란 이름표를 달고서입니다.
친구와 친구 사이에서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어주고 더러는 친구 남편 흉보기에 적당히 맞장구를 쳐줍니다. 남편들에게는 아내를 이해하라고 설득도 합니다. 가끔은 상대편 이야기에 큰 소리로 웃어대고 또 가끔은 내가 우스운 소리로 모두를 웃기기도 합니다. 남자 친구들에게는 아내 칭찬도 열심히 해 줍니다.
“요새 세상에 그런 여자 어디 있니,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깍두기로 밥상에 끼워준 것만으로도 고마워서인가, 맛깔스러운 존재가 되기 위해서 나름대로 노력을 해야 합니다.


난 깍두기를 좋아합니다.
김장을 담그고 난 후 남은 무로 큼직큼직하게 썰어서 굴과 함께 버무린 깍두기를 특히 좋아했습니다. 김치가 우리 밥상에 꼭 필요한 밑반찬이라면 깍두기는 없어도 괜찮기는 하지만 있으면 더욱 좋은 존재입니다. 더구나 기름진 사골국이나 설렁탕에는 깍두기가 꼭 있어야 제격입니다. 주인공의 맛을 개운하게 하는 조연으로서 그 역할이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사실, 김치는 시면 씻어내서 돼지고기 숭숭 썰어 넣고 찌개라도 부글부글 끓이겠지만 아니, 멸치 맛국물 내어 구수한 김칫국이나 혹은 송송 썰어 넣고 김치전을 부치거나 김치볶음밥... 좀 할 게 많은가요. 그러나 깍두기는 다릅니다. 설익었을 때는 그런대로 생무의 상큼한 맛이 사각사각 씹히니 구미를 돋우어줍니다. 폭 익었을 때는 어떻고요. 양념과 어우러진 얼큰하고 걸쭉한 국물, 따끈따끈한 양푼밥에 참기름 한 방울 떨어뜨려서 썩썩 비벼먹으면 그 맛 또한 일품입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황홀했던 순간은 잠깐,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하고 이내 시어져버리면 설 자리가 없어집니다. 더 이상의 역할이 주어지지 않은 연극무대 조연 배우처럼 그 신세가 처량해 집니다. 앙코르 박수는 인색하게도 주인공에게만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난 깍두기가 좋습니다.
단조로운 일상, 입맛 잃은 그대에게 무 특유의 영양가와 매움하고 감칠맛 나는 존재로서 다가섭니다.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 하여 결코 어깨 움츠리지 않았습니다. 또 하나의 맛과의 조화를 생각하며 자신을 지나치게 드러내지 않는 속 깊은 마음가짐에도 뜨거운 박수를 보내 주십시오. 김치처럼 몇 번씩 등장하여 앙코르 송을 부르지는 못하지만 매 순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 무대를 만들도록 노력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무대 뒤편으로 사라진다 해도 아쉬움보다는 함께했던 아름다웠던 순간을 값지게 추억하겠습니다.

오늘저녁 밥상에는 알맞게 익은 깍두기 한 보시기를 김치보시기에 옆에 나란히 올려져있습니다. 진한 곰국도 미리 푹 고아놓았습니다. 산뜻하고 매움한 깍두기 맛으로 잃어버린 구미를 좀 돋우어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