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장릉의 옛이야기 3편,
엄흥도 어른의 “爲善被禍 吾所甘心, 옳은 일을 하다 화를 당한다 하더라도 나는 달게 받겠다!”
영월 장릉의 옛이야기 1편으로, “만남을 준비하여 복 받은 박충원 어른, 낙촌비각(駱村 朴忠元 碑閣)”에 대하여 말씀을 올렸고,
제2편으로는 “소중하게 지켜다오-자물통에 담긴 지혜, 재실(齋室)의 물고기 형상의 자물통에 대하여” 에 이어서
오늘은 제3편으로,
조선국6대 단종대왕의 능이 있는 장릉에 공덕비 되어 단종임금님의 영혼을 모시고 있는
엄흥도 어른의 “爲善被禍 吾所甘心” 대하여 말씀을 올리고자 합니다.
때는 1457년 10월이 됩니다.
세조는, 자신의 친 조카에게 사약을 내리게 되면 친족을 죽음에 이르게 한 왕으로서 후대 대대로 원망을 듣게 될까를 걱정하여 영월에 유배되어있던 노산군에게 “너는 이씨 왕가의 자손이 아니다” 라면서 족보에서 이름을 지우고, 순수 서인(평민)의 이름인 홍위로 사약을 내려 보내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뭔가는 두려움이 있었던가? 봅니다.
“홍위의 시신을 수습하는 자는 삼족을 멸하리라” 라는 어명이 함께 내려오게 됩니다. 여기에서 삼족이란 본가·처가·외가를 말함인데요, 조선시대 형벌의 의미로는 본인·아들·손자를 말함이라 합니다.
이렇게 삼족을 멸하겠다는 어명에 따라 영월의 관아인 관풍헌의 관리들도 승하하신 노산임금에 대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 하다 가장 편안한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 동강에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어명을 어기는 일이 아니었고, 그 어느 누구도 처벌을 면할 수 있었으니 그리 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임금의 시신이 강에 버려지는 세상사에 대하여 안타까워하시던 엄흥도 어른은 이이할꼬.. 어이할꼬.. 걱정에 걱정을 하시다가 자신만의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즉, 세상사람 그 누군가 “그대는 어이하여 이러한 일을 했는고?” 라고 묻는 다면, 당당하고 떳떳하게 자신을 대변할 신념을 한 가지를 정하게 되는 데요~
“爲善被禍 吾所甘心 위선피화 오소감심” 이라는 여덟 자로 된 성어인데요.
풀이를 하면 “옳은 일을 하다 화를 당한다 하더라도 나는 달게 받겠다” 라는 뜻이 됩니다.
이렇게 결심을 하고 나니 그렇게도 마음이 편안하시더랍니다.
즉, “나는 승하하신 임금님을 모시는 일이 옳은 일이니 나를 비롯하여 아들과 손자까지 죽이려면 다 죽여라!!!” 이었습니다.
하여 모시게 된 것이 지금의 장릉 단종대왕 임금의 능이 됩니다.
세상사는 돌고 돌아서 수없이 많은 세월을 기다려야 하지만 바른 자리로 가는가 봅니다.
단종임금께서 승하신지 269년이 지난 1726년에 영조임금께서는 엄흥도 어른의 공이 너무도 크다 하여 “조선의 백성들아!~엄흥도 처럼 만 충절을 지켜다오” 라면서 “그 공덕이 너무도 크므로 여기 공덕비를 내리노라” 하시어 오늘날 이 자리에 공덕비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자남의 세월동안 말없이 서있는 저 공덕비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하고자 하는 말은 마아도 이런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올바른 일을 함에 있어 살아생전에는 존경받을 생각을 하지 말아라!” 하는 듯 하고요, 하고자 하는 일에 있어 10원짜리 동전하나, 쌀 한 톨 보태주지 않으면서 온갖 모함과 손가락질에 왕따까지 시키면서 가슴을 아프게 하지만, “역사는 반듯이 재평가를 할 것이고 존중받을 날이 온다!!” 이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가슴에 간직하고 실천해도 참 좋은 聖語 성어인 爲善被禍 吾所甘心 위선피화 오소감심, 옳은 일을 하다 화를 당한다 하더라도 나는 달게 받겠다! 이었습니다.
출판일 : 2011.07.18 14:44 인빌뉴스홈 > 인빌소식 > 강원 영월 술빛고을 | 기행/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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