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셋째날입니다.
임진년 흙용의 해라 하니 큰 꿈이 이뤄질 것 같아 기대가 큰 2012년의 시작입니다.
오늘은 영월 장릉의 옛 이야기 제 5편으로 조선국 제6대 단종대왕의 능에 있는 배견정(拜鵑亭)에 대한 말씀을 올리고자합니다.
제목만 보아도 짐작하신 분이 계시겠습니다만, 글자 그대로 절 배拜, 두견이 견鵑, 정자 정亭이니
‘두견이 새가 절을 하는 정자’라는 뜻이 됩니다.
이 배견정이 자리잡고 있는 지형의 모습은,
단종임금의 능에서 부터 산의 줄기를 따라 끝자락에 이르면,
마치 거북이가 하늘을 바라보는 것 같은 큰 바위위에 정자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렇게 이름이 지어지게 된 사연은,
지금으로부터 554년 전인 1457년의 10월로 거슬러 올라가야합니다.
세조는 자신의 조카에게 사약을 내리기 전에 먼저 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씨 왕가의 족보에서 이름을 지우게 하였으니 순수한 서인(평민)홍위(弘暐)라는 이름으로 사약을 받아
10월24일 유시(酉時.오후5시~7시 사이)에 영월의 관아 관풍헌에서 승하하시게 됩니다.
이때에 노산군을 모시던 여섯 명의 시녀(궁녀1인, 시녀3인, 종인3인)는
영월을 굽이돌아 흐르는 금장강(錦障江. 동강의 옛 이름)에 몸을 던져 순절(殉節)하게 됩니다.
자신들이 어떻게 하면 편안하게 잘 모실 수 있을까에 애를 썼었는데
임금께서 먼저 이승을 하직하게 되자 ‘우리들이 살아서 무엇하랴, 저승에서라도 편히 모시자’ 라는 듯이,
높디높은 절벽위에서 짙푸른 강물로 뛰어내렸던 것입니다.
그 자리를 후대에는 순절지처(殉節地處)라 하고 낙화암이라 불리게 됩니다만,
바로 이 순절한 여섯 시녀의 영혼이 두견이 새가되어 노산군이 암장되어 있는 동을지산(冬乙智山)을 연일 찾아와
임금의 문안을 여쭙는 듯이, 영혼을 위로하듯 슬피 울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임금이 승하하신지 335년째 되던 해인 1792년에 이르러서야
박기정(朴基正) 영월부사가 귀를 열고 있었으니 아무도 듣지 못하던 영혼의 소리를,
심안으로 들려오는 두견이 새들의 문안 여쭙는 소리를 듣게 되었으니,
비가 오든 눈이 내리든 가림 없이 편안하게 임금을 배알하라고 정자를 세워 그 이름을 배견정이라 짓고,
그 증거 남기기를 정자의 초석을 이루는 커다란 바위 오른쪽에 배견암(拜鵑岩)이라 새기게 되었다 합니다.
살아서 모셨던 단종임금, 순절한 여섯 시녀 두견새 영혼 되어 모셨으니
아마도 옛 어른들께서는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지키고자 했던 자율의 덕목은 이러해야 한다고 말함이 아닐는지요?
영월로 오세요!
오셔서, 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게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배견정의 마루에 올라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노라면,
담장을 넘어서는 세상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는, 온통 두견이 새들의 소리로 들리게 될 것입니다.
그 영혼의 소리는,
목숨보다도 더 진한 가치를 부여했던 조상님들의 신념 중에 하나인 충절을 되돌아보게 하는,
영월 땅 장릉에만 존재하는 옛날 옛날의 역사 이야기, ‘拜 鵑 亭’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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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일 : 2012.01.03 13:47 김원식기자 (dw-carpos@invil.org) / 기자주소 http://reporter.news.invil.org/dw-carp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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