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친화도시 영월, 행기골을 같이 걸을까요!
영월에서 살기 시작한지 어언 15년. 짧지만 짧지 않은 이 시간 동안 나는 영월의 많은 장소를 알게 되었고 누군가가 영월에 대해 물어보면 정말 좋은 곳이라고 망설임 없이 대답하는 사람이 되었다.
남한강이 지나는 길목에 위치한 영월은 맑고 깨끗한 동강과 수려한 경치를 자랑하는 봉래산을 갖고 있다. 또한 봄이면 햇살과 아름답게 피어있는 벚꽃나무를 따라 조용히 걸을 곳이 있고, 여름에는 곳곳에 위치한 계곡과 동강에서 즐길 수 있는 레프팅을 통해 더위를 피할 곳이 있다. 가을이면 영월 주위를 둘러 싼 산들 가득히 수놓아진 단풍들. 이 모든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곳이 영월이다.
이러한 아름다움을 갖고 있는 영월은 많은 매체에 소개되며 유명해지기 시작했고 근 몇 년 사이 많은 여행객이 찾는 관광도시가 되었다. 휴가철에는 영월 시내에 교통체증이 일어날 정도이다. 이렇듯 유명한 관광도시가 된 영월은 여느 관광도시처럼 청령포, 장릉, 선돌, 한반도 지형 등 대표하는 명소가 있다. 관광객들은 대부분 이 곳을 찾고 있다. 하지만 이 곳들 외에도 영월 곳곳에는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장소들이 많고 그 곳들 중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영월 금강정 길목에 위치한 ‘행기골’은 영월의 멈춤과 흐름 그대로 느끼고, 영월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살펴 볼 수 있는 좋은 장소이다. 행기골은 금강정 입구에 위치한 J클래식 빌라 앞에서부터 시작된다. 인도를 따라 쭉 내려가다 보면 눈 앞 가득히 차있는 봉래산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봉래산의 정취를 흠뻑 느끼다 보면 영월향교 앞을 지나게 된다.
조선 시대 영월의 유학 교육을 책임졌던 영월 향교는 입구에 놓여있는 현판에서부터 그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풍화루 (風化樓)’ 즉, '스치는 바람에게도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라는 뜻으로 자연 현상에서도 배움의 모습을 보이던 우리 선조들의 삶의 모습을 살펴 볼 수 있다. 그 앞을 지나다 보면 조용하게 청아한 글 읽는 소리와 바람소리가 귓가에 들여오는 듯하다.
영월 향교 오른 쪽 골목길을 따라 쭉 걸어가다 보면 금강정 공원이 나타난다.
동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금강정 공원은 가족 나들이 장소로는 최고이다.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의 공원에서 가족과 함께 돗자리를 펴고 먹는 도시락의 맛은 일품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금강정은 곳곳에 영월의 역사를 살펴 볼 수 있는 다양한 유적과 표석이 있다. 향교 골목을 따라 금강정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효도권장비와 영월 군민 헌장비이다.
90년대 초반에 세워진 이 두 비석은 당시 영월의 발전을 꿈꾸던 군민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그런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 영월이 이렇게나 발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바로 옆에는 ‘김상태 의병장 순국 충절비’가 위치하고 있다.
을미사변 이후 내려진 단발령에 울분을 참지 못하여 의병을 모집하여 활동한 김상태 의병장은 결국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대구형무소에서 순절하게 된다. 일제강점기에 자신의 목숨을 걸고 의병활동의 길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김상태 의병장은 그 길을 택했고 그런 그를 지금 우리는 이 비석을 통해 기억하고 있다.
그 곳을 지나 주변에 위치한 충혼탑은 한국전쟁 때 목숨을 잃은 호국영령을 모시고 있다.
영월읍 116위, 상동읍 85위, 중동면 8위, 김삿갓면 53위, 북면 102위, 남면 54위, 한반도면 48위, 주천면 56위, 수주면 57위 총 579위를 모시고 있다. 매년 현충일에는 이곳에서 그들의 영을 기리고자 현충일 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충혼탑을 거쳐서 동강을 오른쪽에 끼고 걷다 보면 또 많은 비석들을 살펴볼 수 있다.
백성을 공경하였기에 백성의 이름으로 세워진 조선시대 고위 관리들의 ‘애민청덕비군’으로 한 곳에 모여 있어 한눈에 살펴보기 좋다.
동강을 따라 계속 걷다보면 낙화암에 다다르게 된다.
단종이 관풍헌에서 승하하자 단종을 모시던 6명의 시녀는 금장강, 즉 지금의 동강에 몸을 던진다. 바로 그 곳이 낙화암이고 단종을 저승까지 따라가 모시고자 한 그들의 충절을 기리고자 낙화암에는 순절비, 뒤편에는 ‘민충사’ 사당을 세웠다. 한 번쯤은 이곳을 찾아 발밑을 흐르는 동강을 바라보며 강물에 몸을 던지기 전에 그들의 심정을 한 번 쯤은 떠올려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 옆에는 ‘월기경춘순절지처(越妓瓊春殉節之處)’비가 있다. 이 비석의 주인공인 ‘경춘(瓊春)’은 춘향전의 실존 인물이다.
새로이 부임한 ‘시랑 이수학(侍郞 李秀鶴)’은 금강정 마루에 올라 동강의 경취에 흠뻑 젖어있던 중 건너편 강변에서 빨래하는 아리따운 여인을 발견한다. 그러자 나룻배 노를 저어 강을 건너 경춘을 찾아가 그 자리에서 사랑을 고백하여 둘은 함께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1년 반이 지난 어느 날 임금의 전교를 받은 부사가 한양으로 떠나게 되었고 시랑도 함께 떠나야만 했다. ‘시랑’은 헤어짐이 아쉬워 “입신(立身)하여 다시 찾아오겠다.”약속하면서, 한편의 글을 남기곤 이별을 하게 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바로 춘향전에서처럼, 새로이 부임한 부사가 경춘에게 수청 들 것을 강요하게 된다. 경춘은 ‘시랑’과의 언약을 밝히면서 거절하였지만, 온갖 횡포를 다 부리면서 수절을 강요하였고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감내하던 경춘은, ‘시랑’과의 사랑을 지키기 위하여 금강정 절벽위에서 동강으로 뛰어내려 방년 16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하게 된다. 경춘이 목숨을 잃는 비극적인 결말을 제외하고는 춘향전과 매우 비슷한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는 것과 우리 고장 영월의 이야기라는 것도 굉장히 놀라울 뿐이다.
앞 쪽에 위치한 계단을 따라 올라온 이후 앞으로 쭉 걸어가다 보면 라디오스타 박물관이 나타난다.
KBS 영월 방송국은 2004년 폐쇄된 이후 2006년 영화 ‘라디오스타’ 촬영지로 사용된다. 라디오스타 개봉 이후 촬영지를 찾는 관광객을 위해 이곳은 ‘라디오스타 박물관’으로 바뀌게 되었고 지금은 박물관의 역할을 맡고 있다. 라디오의 역사, 라디오 방송 체험 그리고 영화 라디오스타의 감동을 전하는 라디오 스타 박물관은 행기골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어 행기골에 볼 것만이 아닌 체험으로 활력을 불러일으켜 준다.
다가오는 주말. 멀리 떠날 필요 없이 우리 고장 영월에 위치한 행기골을 찾아 영월의 역사와 아름다운 경치를 살펴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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