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행기골 답사기 (금강정편)
손현순 여성친화도시 1기 모니터
영월군에서 지난해 여성친화도시사업으로 행기골 주변 지역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나는 영월 주민이면서도 영월에 대한 지식이 너무 부족함을 알게 되었다. 관광자원이 풍부한 우리지역에 사는 주민이라면 영월을 찾는 관광객을 언제 어느 때 만나더라도 친절하게 영월의 역사와 문화를 안내할 수 있다면 내가 살고 싶은 영월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마침 김진 교수(세경대학과 식품영양학과)는 작년 희망 영월 12월호에서 “행기골 같이 걸을까요” 라는 제목으로 행기골 주변을 개략적으로 소개해 주셨고, 올해 1월호는 김원식 선생이 “행기골, 그 길에서 만난 춘향 ‘고노옥’을 아시나요?” 편으로 세부적인 관광해설을 해 주셨다.
그렇다면 나도 행기골 답사를 시작으로 영월 공부를 시작하기로 하고 금강정을 선정해 보았다.
금강정(錦江亭)은 영월읍 봉래산자락에 있는 정자이다.
금강정으로 들어서는 길은 세 가지가 있는데, 영월성당으로 들어서는 길(금강공원길)을 영월주민이 많이 이용한다.
성당 좌측 돌담길을 끼고 돌면 우측으로 동강이 내려다보이고 잠시 걷다보면 좌로 아름다운 솔밭과 라디오스타 박물관이 보인다.
그쪽으로 가는 아스팔트길을 버리고 폭신폭신한 낙엽 쌓인 길을 들어서면
발걸음은 다시 느려져 조선시대 세워진 ‘애민 청덕비군’을 하나하나 볼 수밖에 없다.
첫 번째 비문은 심하게 훼손되어 보는이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이렇게 열을 맞춰 집단적으로 공덕비가 있는 것을 보면 영월 사람들이 얼마나 금강정 주변을 사랑했는지 알 수 있다.
또 다른 비를 지나 4H 청소년상이 눈에 들어오자마자 또다시 열을 맞춰 하늘을 찌를 듯한 메타세콰이어 나무에 깜짝 놀라고 나면
금강정 안내간판이 나를 반긴다.
금강정 안내간판을 읽어 보면 다음과 같다.
“문화재지정 : 문화재 자료 제24호. 소재지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금강공원길 136
이 정자는 1428년(세종10년) 김복항이 처음 건립하였다고 하며, 1684년(숙종10년) 자삼(子三) 이야(李埜)가 영월군수로 있을 때 지었다. 1684년(숙종) 송시열이 쓴 금강정기가 남아 있다. 건물은 30cm 높이의 자연석 기단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둥근기둥을 이용한 정면네칸. 측면 세칸 규모로 초익공 양식에 겹처마 팔작지붕의 건물이다. 정자의 바닥은 우물마루(넓은 널을 짧게 잘라 끼워 놓은 마루)이며 머름형식의 평난간이 둘러져있다.“
안내문에 김복항이 처음 건립하고, 이야(李埜)가 영월군수로 있을 때 지었다라고 했는데, 고쳐지었는지 완전히 훼손된 것을 새로 지었는지 궁금하여 다른 기록을 찾아보니 고쳐지었다고 한다. 사실 확인을 부탁드린다.
지붕형식은 팔작지붕인데 여덟팔(八)자로 생겨서 그런가 보다 해서 바로 위에 있는 민충사 지붕을 보니 다른 모양새를 하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확인해 보니 민충사는 맞배지붕으로 지붕의 두면이 서로 등을 대고 있는 형상이라 맞배지붕인데, 금강정 팔작지붕은 팔자모양이란 말은 없고 어려운 설명을 하고 있어 그냥 여덟팔자 모양이려니 하고 생각해 본다.
동강위에 있는 정자가 왜 금강정인지 궁금할 수 밖에 없어 인터넷과 관련서적을 찾아보니 다음과 같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영월군 기록(1611년 광해군3년)에 보면
“금강정(錦江亭)은 금장강의 언덕 절벽 위에 있다. 선덕(宣德) 무신년에 군수 김복항이 세운 것이다. 동쪽으로는 금장강에 임하였으며, 남쪽으로는 금봉연을 바라본다. 강 밖에 상덕촌이라는 마을이 있어 초가집들과 성긴 울타리들이 뽕나무들 사이로 숨었다 보였다 한다. 남쪽에는 밀적포가 있으니 나무들이 울창하고, 마을 연기와 물기운이 은은히 가리우고 어른거려서 바라보면 그림과 같다.”
반면에 영월군에서 발행한 “영월과 단종사” 장릉사보(1791년 정조15년) 민충사도(愍忠祠圖)를 보면 강 이름이 동강(東江)으로, 강 건너편 마을은 덕포리(德浦理)로 표기 되어있다.
위의 두 사료를 보고 비교하면 금강정은 말 그대로 금장강(錦長江:비단같이 길게 흐르는 강)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흥미로운 것은 상덕촌. 밀적포가 마을이 번성해 덕포리로, 금장강이 동강으로 명칭이 변했음을 알 수 있다.
광해군에서 정조에 이르는 180년 사이에 금장강이 동강으로 변했으니 딱히 어느 해에 강 이름이 변했는지 알 수 는 없고, 다만 장릉사보 민충사도를 만들고자했던 화공(畵工)이 앞에 흐르는 강 이름이 무엇입니까? 하고 한양말로 물었을 때 지나가는 영월사람 대답하기를 “동강이래요” 해서 그때부터 변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정자마루에 오르려하니 흔히 볼 수 있는 “신을 벗고 올라가시오”하는 문구 없이 지저분하다. 옛날 양반들의 놀이공간이었던 아름다운 정자가 이제는 일반인에게도 무시되는 것 같아 씁쓸하고 정자 주변에 있는 야간조명시설도 작동은 되고 있는지 괜한 걱정을 하게 된다.
낙화암과, 순절비, 민충사등 아직도 많은 이야기는 다음 기고자에게 넘기기로 하고 금강정을 들어서는 두 가지 다른 방법을 소개하고자한다. 이 길은 영월사람이 너무 잘 알기에 무시되어 온 것 같다. 하지만 나와 같이 외지에서 온 사람들 에게는 아주 흥미롭다.
금강정으로 들어서는 두 번째 방법은 성당으로 가는 길을 지나쳐서 향교로 가는길(내성 50번길)이다.
이 길은 향교, 금강공원의 솔나무 숲, 라디오스타 박물관을 즐기며 갈 수 있다.
세 번째 방법은 향교길과 성당길 중간에 나있는 행기골 골목(이 길도 내성 50번길이다)을 통해 갈 수 있다.
이 골목길은 우리나라 가옥의 70년대 모습을 볼 수 있어, 향교길을 통해 조선시대 역사를 느낄 수 있다고 하면, 이 길은 나의어린 시절이 그리워지는 추억의 길이라 할 수 있다. 이 골목길은 나를 충혼탑으로 안내하는데 충혼탑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이 아기자기 재미있다. 충혼탑에 서면 좌측에서부터 게이트볼장, 솔나무 숲. 라디오스타 박물관, 동강을 기분 좋게 조망할 수 있다. 녹음이 우거지는 여름에 동강을 볼 수 있는지는 오는 여름에 다시 한번 봐야 할 일이다.
이제 금강정을 떠나면서 계절마다 변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오는 봄이 기다려진다. 코스를 달리하여 금강정 안내간판 왼쪽으로난 계단을 오르는데 기분이 좋다. 이 계단은 4H 청소년상과 함께 우리나라 근대사를 말해주는 설치물로 아끼고 보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금강정은 낙화암이란 절경에 세워진 아름다운 정자이다.
자연은 철마다 스스로 아름다움을 유지하는데, 인간이 만든 설치물은 가꾸는 사람이 없으면 흉물로 변할 수 있다는 생각에 다음에는 빗자루라도 가지고 와야겠다는 마음으로 돌아왔다.<사진제공: 김원식 영월군 문화관광 해설사>
'문화재 역사 유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월향교 대성전 봉안 25위 (5성위+송조2현+동국18현) 명부 (0) | 2015.06.04 |
---|---|
단종대왕이 드셨던 술은? (0) | 2015.03.28 |
여성친화도시 영월 행기골, 그 길에서 만난 영월의 춘향 '고노옥'을 아시나요? (0) | 2015.01.29 |
행기골, 같이 걸을까요, 여성 친화도시 영월 / 김진 세경대교수 기고문 (0) | 2014.12.31 |
신증동국여지승람 제46권 강원도(江原道) 영월군(寧越郡) 기록 (0) | 2014.1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