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친화도시 영월 행기골, 그 길에서 만난 영월의 춘향 '고노옥'을 아시나요?
희망영월 2015년 01월호(월간) 제98호 4면. 글 / 김원식
춘향전이라고 하면
누구이든 다 알고 있는 사랑이야기입니다. 영월에는 춘향전의 실존인물인 ‘경춘 고노옥(瓊春 高魯玉)’이 살고 있었습니다. 1771년 영조47년1월부터 1772년 영조48년 7월까지, 1년 반 동안의 사연이 담긴 ‘월기경춘순절지처(越妓瓊春殉節之處)’비(碑)가, 1795년 8월에 동강이 굽이돌아 흐르는 절벽위에 모셔져 오늘에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춘향전에서 표현된 내용처럼,
영월관아의 기생이었던 경춘은 부사와 함께 새로이 부임한 ‘시랑 이수학(侍郞 李秀鶴)’ 이와 사랑을 나누게 됩니다. 금강정 마루에 올라 동강의 경취에 흠뻑 젖어있던 ‘시랑(侍郞)’의 눈에는, 건너편 강변에서 빨래하는 아리따운 여인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물빛고운 물결 따라 반사되는 햇살이 여인의 얼굴에 비추었으니 더욱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였던가? 봅니다. 나룻배 노를 저어 강을 건너니, 경춘(瓊春)을 만나게 된 ‘시랑(侍郞)’은 그 자리에서 사랑을 고백하여 길고긴 사랑의 길을 걷게 됩니다.
이야기에는 언제나 기쁨과 고난이 순차적으로 찾아온다고 하죠?
경춘(瓊春)과 ‘시랑(侍郞)’에게도 작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1년 반이 지난 어느 날 임금의 전교를 받은 부사가 한양으로 떠나야 했으니 시랑도 함께 떠나야만 했지요. ‘시랑(侍郞)’은 헤어짐이 아쉬워 언약하기를 “입신(立身)하여 다시 찾아오겠다.”면서, 한편의 글을 남기곤 작별을 해야만 했습니다.
경춘(瓊春)에게는 행복했던 순간이 다 지나가고 아픔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춘향전에서처럼, 새로이 부임한 부사가 수청 들 것을 강요하게 되고, 경춘(瓊春)은 ‘시랑(侍郞)’과의 언약을 밝히면서 거절하였지만, 온갖 횡포를 다 부리면서 수절을 강요하는 부사 이었습니다.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감내하던 경춘(瓊春)은, ‘시랑(侍郞)’과의 사랑을 지키기 위하여 금강정 절벽위에서 동강으로 뛰어내려 방년 16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전설 따라 삼천리처럼, 소설속의 인물처럼 서글픈 이야기이지만, 비석이 증명하는 역사적인 사실이었기에 순절지처를 찾아간 저의 코끝은 찡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겨울바람 때문이라고, 애써 둘러대면서도 수십 길 절벽아래 푸르게 흐르기만 하는 강물을 바라봅니다. 순절의 길을 택한 경춘(瓊春)이가 너무도 아리게 다가섰기 때문이지요.
한 송이 꽃처럼 동강에 낙화된 경춘(瓊春)의 소식을 듣게 된 이웃들이 급히 강으로 달려오니, 늦가을에 떠도는 낙엽 잎처럼 붉은 듯 푸른 듯 시리게만 보이는 경춘의 시신을 건져 올린 이웃들은, 몸속에 무언가 하얗게 비추이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고이 간직하던 연인의 글인 시랑 이시학(侍郞 李秀鶴)의 언약이었습니다. 이웃들은, 이루지 못한 사랑을 안타까워하며 지켜내려는 사랑 앞에서, 경춘의 순절에 큰 절을 올리면서 장사를 지내주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24년이 지난 어느 날,
도순찰사(都巡察使) 손암 이병정(巽菴 李秉鼎)이 영월부에 들려 민심을 살피던 중에 백성들로부터 월기 경춘의 일을 듣게 됩니다. 이에 도순찰사(都巡察使)는 “지키고자 했던 가치는 사랑이었고, 사랑을 위한 순절은 세상 사람들의 표상이 되었으니 그 아픔을 위로하고 널리 알리고자 하노라” 면서, 1795년 8월에 평창군수 남희로(南羲老)에게 기문(記文)을 짓게 하고, 영월군수 한정운(韓鼎運)이 비문(碑文)을 쓰고 세우게 하였으니, 이름 하여 월기경춘순절지처(越妓瓊春殉節之處)비가 됩니다. 비석의 뒷면에는 위와 같은 구구절절한 사연들을 빼곡히 기록하였기에 오늘날까지 옛날 옛날에 있었던 사연을 우리들은 알 수 있었습니다.
시랑과 경춘, 이도령과 춘향이!
어쩌면 이렇게도 춘향전의 설정 자체가 같았을까요? 놀랍기만 합니다.
경춘은 순절로써 끝을 맺었지만 춘향전에서는 고난을 감내한 결과가 복(福)으로 화답하는 행복한 만남으로 끝을 맺게 되었으니, 아마도 춘향전을 쓴 당대의 선비 생각에 비록 헐벗게 살아도 사랑하는 이와 함께라면 이승이 좋다는 생각이었던가? 봅니다.
사랑이야기는 당자들만의 성스러운 나눔으로서 절대적으로 타인에게 알려지지 않는 것이 가슴속에서 오래도록 흩어지지 않는 애틋한 뜨거움일 것입니다. 그래서 영월의 고노옥의 사랑이야기가 알려지지 않았을까요?! 영월에는 춘향전의 원본이자 실존인물인 경춘 고노옥(瓊春 高魯玉)의 순절비가 있으니, 사랑을 헤아려보고자 하시는 분은 영월로 오십시오!!!
아래에 비문(碑文)의 전체 문장을 올리면서,
여성친화도시 영월의 행기골에 담겨있는 역사의 향기 ‘越妓瓊春殉節之處(월기경춘 순절 지처)' 에 대하여 말씀을 올렸습니다.
고맙습니다. <국가지질공원해설사`영월군문화해설사`여성친화도시 1기모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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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碑文]越妓瓊春殉節之處
越妓瓊春 故李侍郞莅越時 所眄以其初許身也 故欲自潔以守 及後官之來 衙內人有强之者 數被箠楚 殆不能堪一日盛服而入 言笑自如曰 倘無數日呼喚 當調病軀 一聽所欲 翌朝遂往訣其父墳 歸爲諸弟梳 仍起往錦障江邊 坐於絶石崖歌數闋 泣下沾裳 悲恨不自勝時 稚弟在傍 乃詒而使之去 卽奮身投水死歲壬辰十月 其年十六 家人奔往 拯之衣衿 有隱映物 裂縫視之 乃李侍
郞筆嗚呼其死也 視古之從容就義者何如哉 今都巡察使巽菴李公 以大冢宰出按關東節行部 過越州聞而奇之曰 以賤籍而乃能辨此 此眞烈女也 烏可無樹風聲之道乎 遂捐俸屬越守俾立一片石識其處 又屬余記其顚末 余惟瓊春之死 距今爲二十四年 始得表顯之 微我公瓊春之節 其將湮沒而已也乙卯八月 平昌郡守南羲老記 寧越府使韓鼎運書
[해역]월기경춘순절지처
영월기생 경춘(瓊春)은 예전 이 시랑(李侍郞)이 영월 땅에 부임해 왔을 때, (서로)눈에 들은 바 되어 처음으로 몸을 허락하게 되었다. 이런 고로 스스로 몸을 정결히 하여 수절코자 하였는데, 후임 관리(부사)가 오게 되자 관아 내의 사람으로 그녀를 강제하는 자가 있어서, 수차례 추초(箠楚: 볼기를 치는 형벌)를 당하매, 더는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루는 성복(盛服)을 하고서 (관아에)들어 웃는 얼굴로 태연히 말하기를: “만약 수일간만 부름이 없다면, 마땅히 병난 몸을 잘 조섭하고는 원 하는 바(욕구)를 다 들어 드리겠습니다.”라고 했다. 이튿날 아침 마침내 아버지 묘소로 가서, 하직 인사를 하고 돌아와 여러 동생들을 위해 머리를 빗겨 주었다. 이어서 일어나 금장강(동강)변으로 가서는 벼랑 끝 단애에 앉아서 노래 몇 수를 부르니 눈물은 치마를 적시는데, 슬픔과 한을 누를 수가 없었다. 그 때 어린 동생이 옆에 있었기로, 이에 그를 달래어 돌아가도록 하고는, 즉시 분연히 몸을 일으켜 강물에 투신하여 자결하니, 때는 임진년 10월로 그녀 나이 16세였다.
집안사람이 급히 달려가 옷깃을 건져 올리는데, 무엇인가 은연히 비치는 것이 있어서 꿰맨 자리를 뜯고서 보니, 과연 이 시랑의 필적이었다. 오호라! 그녀의 죽음은 지난날 의를 위해 의연히 목숨 바쳤던 이들과 견주어 볼 때, 못함이 없지 않은가! 이제 도순찰사(都巡察使) 손암(巽菴) 이공이 대총재(大冢宰)로서, 관동의 절행부(節行部)를 살피던 차에 월주(영월)를 지나다가 보고를 접하고 이를 기이하게 여겨 말하기를: “천적(賤籍)에 오른 몸으로서 이 같은 일을 해 낼 수 있었다니 이는 참으로 열녀로다.
어찌 풍성지도의 본으로 세우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마침내 봉급을 내어 영월군수에게 그녀가 순절한 곳에 일편 비석을 세워 표지를 남기도록 부탁하고, 또한 나에게는 그 전말의 내용을 기(記)하도록 부탁하였다. 생각하건대 경춘이 죽은 지 오늘로 24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그녀를 드러내어 표장하게 되었으니, 우리 공(巽菴 李公: 李秉鼎)이 아니었다면 경춘의 절행 그것은 어쩌면 인몰되어 없어지고 말았으리라. 을묘(1795년, 정조 19년) 8월 평창군수 남희로(南羲老)가 기문을 짓고, 영월군수 한정운(韓鼎運)이 비문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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