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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4월 7일 (금) 10:42 뉴스메이커
[특집]한국을 좀먹는 ‘노란봉투 남자들’
세상을 뒤흔드는 게이트 브로커의 폐해… 인맥에 좌우되지 않는 투명한
사회는 요원한가
현재 한 국제기구에 소속해 활동 중인 박재완씨(가명·49)는 정·재계에서 최고의 해결사(?)로 통한다. 이른바 ‘특급로비스트’다 하지만 그의 경력과 실체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비밀리에 움직이고 보안을 생명으로 여기는 그의 처세술 때문이다. 그 누구도 풀지 못한 민원이 그의 손만 거치면 대부분 해결된다는 게 그를 오랫동안 지켜본 한 경제계 인사의 설명이다.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로비스트들도 그를 상대로 ‘로비’를 위한 ‘로비’를 했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전해질 정도로 로비의 귀재라는 게 지인들의 주장이다.
박씨가 이렇게 정·재계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오랜 정치부 기자 생활로 몸에 밴 정보수집 능력과 부지런함, 여기에다 화려한 인맥 덕분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도 그와 1시간가량만 얘기를 나누면 ‘형님’ 또는 ‘아우’가 될 정도로 처세의 달인이라는 점도 한몫하고 있다.
>단기간 고도성장의 어두운 단면
박씨는 “우리 나라에서 사업에 성공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 과 함께 풍부한 ‘인맥’”이라면서 “불가능에 가까운 일도 평소에 잘 관리한 인맥만 통하면 어렵지 않게 풀 수 있는 게 우리 나라의 실상”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한국사회가 어느 나라보다 인맥에 의해 결정되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사람을 많이 안다고 모든 일이 술술 풀리는 게 아니다”라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해줄 사람을 정확하게 찾아내 일을 추진해야 성공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물론 그는 “불법적인 일은 뒤탈(?) 때문에 절대 관여하지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그런 그도 요즘은 지극히 몸을 사린다. 정치 1번지인 여의도와 특급 호텔커피숍이 그의 주활동 무대지만 최근엔 해외에 머무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윤상림·김재록 게이트 등 초대형 게이트가 잇달아 터져서다. 혹시 자신에게 불똥이 튈지 모른다는 생각에 안테나를 곤두세운 채 해외에 피해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최근 연이어 터진 각종 게이트는 결국 격동기에 놓여 있는 한국 사회의 단면이며,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짧은 기간에 이뤄낸 고도성장의 부작용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안승호 숭실대 교수(경영학)는 “그동안 끊이지 않고 일어난 대부분의 게이트는 고도성장에 따른 불가피한 현상”이라면서 “특히 인맥을 활용해 일을 손쉽게 풀어나가려는 문화와 절차를 무시하려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의 구태에서 비롯됐다”라고 분석했다. 혈연과 지연, 학연 등이 문제 해결의 열쇠가 되는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 “후진국일수록 인맥을 동원한 일처리가 많다”면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는 한국이 각종 게이트로 물들고 있어 지금이라도 대책마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서진수 강남대 교수(경제통상학)는 “일련의 게이트는 한국의 정치와 경제, 문화, 사회 등이 성숙하지 않아 나타난 현상”이라면서 “사회가 투명해지고 공정한 경쟁이 자리를 잡으면 각종 게이트는 점차 사라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서 교수는 “유력 정치인과 결탁하면 기업 활동에 유리할 것이라는 기업인들의 잘못된 생각과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로비스트의 생각이 맞물려 각종 게이트가 끊이지 않는다”면서 “인맥에 좌지우지 되지 않는 투명한 사회가 먼저 정착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각종 게이트가 되풀이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사회 각 분야가 성숙하고 국민의 의식구조가 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정치와 경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지만 분명한 선을 긋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경제적인 문제를 정치적으로 풀게 되면 부작용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인맥을 로비에 활용할 경우 부작용도 적지 않다고 우려했다. 인맥관리 전문기업 (주)위드웍스 윤형돈 대표는 “최근 들어 인맥관리에 대한 관심이 기업 총수는 물론 일반인들까지 커지고 있다”면서 “하지만 로비를 위한 포석차원의 인맥 쌓기는 결국 공멸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한 대기업 임원은 “현실적으로 경제문제를 법대로, 혹은 경제방식으로 접근해서는 풀 수 없는 경우가 많다”면서 “문제를 쉽게 해결하기 위해 로비스트를 동원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임원은 “이권이 걸려 있는 사업을 차지하기 위해 연줄을 동원하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는 지극히 불가피한 일이지만 각종 게이트로 비화하는 등 부작용이 나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기업의 한 임원은 “최근 M&A(기업 인수 합병) 등을 통해 몸집을 불린 기업 일부는 유능한 로비스트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면서 “외국과 같은 합법적인 로비스트 활동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기업인들이 필요성을 느낀다는 것이다.
물론 이로 인해 부작용이 속출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일어난 각종 게이트는 유력 정치인과 경제인이 결탁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 발생한 게이트만 봐도 그렇다. 이른바 김대중 정부의 ‘3대 게이트로’ 거론된 진승현·이용호·정현준 게이트 모두가 당시 정치인 실세와 경제인의 유착에서 빚어졌다.
서진수 교수는 “정치와 경제가 균형을 이뤄야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는 그렇지 못하다”면서 “정치·행정력이 강할수록 기업들이 동원한 로비스트들의 활동은 활발하다”고 말했다. 힘이 있는 곳을 향한 경제인들의 로비가 지속될 수밖에 없는 게 최근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게이트란 말은 미국의 닉슨대통령이 불법행위에 가담하면서 처음 등장했다. 그 뒤로 정부 또는 정치인이 관련된 불법행위를 말할 때 무슨 무슨 게이트라고 통칭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체로 ‘게이트’를 유력 정치인과 경제인이 관련된 불법행위를 말할 때 사용한다. 예를 들어 윤태식씨와 청와대 고위간부가 연루 된 사건을 ‘윤태식 게이트’로불렀고 , G&G그룹 이용호 사장의 정·관계 로비사건을 ‘이용호 게이트’라고 했다. 게이트가 터질 때마다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로비스트’다. 특히 메가톤급 여파를 낳게 한 김재록 게이트는 국민의 정부 시절 벌어진 ‘최규선 게이트’와 유사한 점이 많아 흥미롭다.
김재록씨와 최규선씨는 둘 다 권력의 실세나 최고위층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기업인들의 민원을 들어주는 대가로 돈을 챙긴 ‘희대의 로비스트’였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최씨는 “체육복표 사업자로 선정되게 해달라”거나 “관급 공사를 수주하게 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10억여 원을 챙긴 혐의로(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로 2002년4월 구속됐다. 김씨도 2002년부터 2005년까지 기업 인수나 은행대출 성사를 도와 달라는 청탁과 함께 수십 억 원을 받은 혐의로 최근 구속됐다. 더욱이 이들은 출신지역도 비슷하다. 둘 다 호남 출신으로 정치권 주변에서 맴돌다가 김대중(DJ) 전 대통령 집권 이후 승승장구한 점도 흡사하다. 전남 영광 출신인 김씨는 1990년대 중반까지 기업체 대표로 일했지만 경제보다 정치쪽에 관심이 많았다.
정치·행정력이 강할수록 로비 활발
김씨는 1996년 이한동 당시 신한국당 고문의 특보로 정치권과 처음 인연을 맺었고, 이듬해 대선을 앞두고 DJ 캠프에 합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남 나주가 고향인 최씨도 만만치 않다. 1997년 DJ의 대외담당 보좌역으로 정계에 입문한 그는 이듬해 정권인수위원회에도 참여했다. 비록 주위의 견제로 청와대 입성엔 실패했지만 2000년 ‘DJ 정권의 2인자’로 불렸던 권노갑 당시 민주당 고문의 특보로 재기에 성공했다.
학력과 경력이 불분명한 것 또한 이들의 공통점이다. 김씨는 아서앤더슨 한국지사장 시절인 1998년 국내 언론과 인터뷰에서 “한국외국어대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받았다”고 밝혔지만 대학측은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최씨의 경우 “미국 버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고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스칼라피노 교수의 수제자”라고 주장했지만 이 역시 거짓말로 판명됐다.
그렇다면 게이트의 단골손님인 브로커와 로비스트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2000년 대한민국을 뒤흔든 두 여성의 사건을 통해 비교해 볼 수 있다. 국방부의 정찰기 도입 사업인 백두사업에 개입했던 린다 김씨(53)와 경부고속철도 차량 선정 로비 의혹에 관련된 호기춘씨(57)는 대규모 국책사업을 쥐락펴락했다는 점에서 온 국민의 관심을 모았다. 두 사람 모두 재력과 미모를 바탕으로 사업결정의 배후에서 로비를 했다. 호씨는 프랑스 알스톰사의 한국지사장과 결혼한 뒤 경부고속철도 선정사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은 달랐다. 호씨는 일반적인 브로커들이 처벌되는 알선수재 혐의로 징역 1년6월을 선고받았다. 자격이 없는데도 사업에 개입한 것은 불법이라는 것이다.
로비 양성화를 위한 법제정 검토
반면 김씨는 국가기밀보호법 위반 혐의가 적용돼 징역 1년이 선고됐다. 미국 무기제조업체 E시스템사의 공식 에이전트였기 때문이다. 직원이 자기회사에서 받은 돈은 알선수재죄 처벌 대상이 아닌 ‘정당한 월급’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호씨는 알스톰사와 공식 에이전트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다. 김씨도 당시 자신을 호씨와 비교하는 분위기에 대해 “나는 무기체계 전문가다. 호씨는 로비스트가 아니라 브로커”라며 불쾌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브로커보다 로비스트가 합법적인 영역에 가깝게 있지만 현재 우리나라는 로비 활동을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브로커와 로비스트 사이에는 교도소 담벼락만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들을 구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일부 의원들에 의해 추진되는 로비스트법 입법은 큰 관심을 끌 만하다. 지난해 7월 ‘로비스트 등록과 활동공개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한 민주당 이승희 의원(50)은 건전한 로비 활동과 브로커의 행위를 구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마약처럼 시장에 공개되지 않은 물건을 거래할 때 위험비용이 늘듯, 로비 활동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면 선의의 로비가 설 자리가 없어진다고 했다. 로비스트법은 곧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 상정돼 관련 공청회가 열린다. 이 의원 등은 연내 처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최근 국가청렴위원회가 로비 양성화에 대한 법제정을 검토하겠다고 밝히는 등 사회적 분위기도 무르익었다. 이 의원은 로비스트 윤리강령 마련과 로비스트 양성과 관련된 제도 보완 등에도 힘을 쏟기로 했다. 국회의원으로 로비 대상이기도 한 그는 “로비스트로 등록된 사람은 활동을 주무관청에 보고하도록 법안에 규정했는데, 이는 정책 결정권자가 누구를 만났는지 공개된다는 뜻이다”라면서 “지금처럼 합리적 이유 없이 학연·지연을 이용해 부당한 청탁을 하거나 사건에 개입하는 일이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손쉽게 일을 해결하려는 일부 경제인들의 구태와 한탕주의로 무장한 일명 ‘노랑봉투의 사나이’(로비스트 혹은 브로커)가 존재하는 한 게이트는 계속 일어날 전망이다. 실제로 서울 세종문화회관 인근 커피숍에는 지금도 노랑봉투의 사나이들이 ‘1조 원’ ‘10조 원’ 얘기를 심심찮게 하고 있다. 게이트를 향한 시한폭탄이 지금도 존재한다는 얘기다.
<김재홍 기자 atom@kyunghyang.com>
현재 한 국제기구에 소속해 활동 중인 박재완씨(가명·49)는 정·재계에서 최고의 해결사(?)로 통한다. 이른바 ‘특급로비스트’다 하지만 그의 경력과 실체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비밀리에 움직이고 보안을 생명으로 여기는 그의 처세술 때문이다. 그 누구도 풀지 못한 민원이 그의 손만 거치면 대부분 해결된다는 게 그를 오랫동안 지켜본 한 경제계 인사의 설명이다.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로비스트들도 그를 상대로 ‘로비’를 위한 ‘로비’를 했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전해질 정도로 로비의 귀재라는 게 지인들의 주장이다.
박씨가 이렇게 정·재계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오랜 정치부 기자 생활로 몸에 밴 정보수집 능력과 부지런함, 여기에다 화려한 인맥 덕분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도 그와 1시간가량만 얘기를 나누면 ‘형님’ 또는 ‘아우’가 될 정도로 처세의 달인이라는 점도 한몫하고 있다.
>단기간 고도성장의 어두운 단면
박씨는 “우리 나라에서 사업에 성공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 과 함께 풍부한 ‘인맥’”이라면서 “불가능에 가까운 일도 평소에 잘 관리한 인맥만 통하면 어렵지 않게 풀 수 있는 게 우리 나라의 실상”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한국사회가 어느 나라보다 인맥에 의해 결정되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사람을 많이 안다고 모든 일이 술술 풀리는 게 아니다”라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해줄 사람을 정확하게 찾아내 일을 추진해야 성공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물론 그는 “불법적인 일은 뒤탈(?) 때문에 절대 관여하지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그런 그도 요즘은 지극히 몸을 사린다. 정치 1번지인 여의도와 특급 호텔커피숍이 그의 주활동 무대지만 최근엔 해외에 머무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윤상림·김재록 게이트 등 초대형 게이트가 잇달아 터져서다. 혹시 자신에게 불똥이 튈지 모른다는 생각에 안테나를 곤두세운 채 해외에 피해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최근 연이어 터진 각종 게이트는 결국 격동기에 놓여 있는 한국 사회의 단면이며,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짧은 기간에 이뤄낸 고도성장의 부작용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안승호 숭실대 교수(경영학)는 “그동안 끊이지 않고 일어난 대부분의 게이트는 고도성장에 따른 불가피한 현상”이라면서 “특히 인맥을 활용해 일을 손쉽게 풀어나가려는 문화와 절차를 무시하려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의 구태에서 비롯됐다”라고 분석했다. 혈연과 지연, 학연 등이 문제 해결의 열쇠가 되는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 “후진국일수록 인맥을 동원한 일처리가 많다”면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는 한국이 각종 게이트로 물들고 있어 지금이라도 대책마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서진수 강남대 교수(경제통상학)는 “일련의 게이트는 한국의 정치와 경제, 문화, 사회 등이 성숙하지 않아 나타난 현상”이라면서 “사회가 투명해지고 공정한 경쟁이 자리를 잡으면 각종 게이트는 점차 사라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서 교수는 “유력 정치인과 결탁하면 기업 활동에 유리할 것이라는 기업인들의 잘못된 생각과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로비스트의 생각이 맞물려 각종 게이트가 끊이지 않는다”면서 “인맥에 좌지우지 되지 않는 투명한 사회가 먼저 정착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각종 게이트가 되풀이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사회 각 분야가 성숙하고 국민의 의식구조가 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정치와 경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지만 분명한 선을 긋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경제적인 문제를 정치적으로 풀게 되면 부작용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인맥을 로비에 활용할 경우 부작용도 적지 않다고 우려했다. 인맥관리 전문기업 (주)위드웍스 윤형돈 대표는 “최근 들어 인맥관리에 대한 관심이 기업 총수는 물론 일반인들까지 커지고 있다”면서 “하지만 로비를 위한 포석차원의 인맥 쌓기는 결국 공멸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한 대기업 임원은 “현실적으로 경제문제를 법대로, 혹은 경제방식으로 접근해서는 풀 수 없는 경우가 많다”면서 “문제를 쉽게 해결하기 위해 로비스트를 동원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임원은 “이권이 걸려 있는 사업을 차지하기 위해 연줄을 동원하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는 지극히 불가피한 일이지만 각종 게이트로 비화하는 등 부작용이 나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기업의 한 임원은 “최근 M&A(기업 인수 합병) 등을 통해 몸집을 불린 기업 일부는 유능한 로비스트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면서 “외국과 같은 합법적인 로비스트 활동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기업인들이 필요성을 느낀다는 것이다.
물론 이로 인해 부작용이 속출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일어난 각종 게이트는 유력 정치인과 경제인이 결탁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 발생한 게이트만 봐도 그렇다. 이른바 김대중 정부의 ‘3대 게이트로’ 거론된 진승현·이용호·정현준 게이트 모두가 당시 정치인 실세와 경제인의 유착에서 빚어졌다.
서진수 교수는 “정치와 경제가 균형을 이뤄야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는 그렇지 못하다”면서 “정치·행정력이 강할수록 기업들이 동원한 로비스트들의 활동은 활발하다”고 말했다. 힘이 있는 곳을 향한 경제인들의 로비가 지속될 수밖에 없는 게 최근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게이트란 말은 미국의 닉슨대통령이 불법행위에 가담하면서 처음 등장했다. 그 뒤로 정부 또는 정치인이 관련된 불법행위를 말할 때 무슨 무슨 게이트라고 통칭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체로 ‘게이트’를 유력 정치인과 경제인이 관련된 불법행위를 말할 때 사용한다. 예를 들어 윤태식씨와 청와대 고위간부가 연루 된 사건을 ‘윤태식 게이트’로불렀고 , G&G그룹 이용호 사장의 정·관계 로비사건을 ‘이용호 게이트’라고 했다. 게이트가 터질 때마다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로비스트’다. 특히 메가톤급 여파를 낳게 한 김재록 게이트는 국민의 정부 시절 벌어진 ‘최규선 게이트’와 유사한 점이 많아 흥미롭다.
김재록씨와 최규선씨는 둘 다 권력의 실세나 최고위층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기업인들의 민원을 들어주는 대가로 돈을 챙긴 ‘희대의 로비스트’였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최씨는 “체육복표 사업자로 선정되게 해달라”거나 “관급 공사를 수주하게 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10억여 원을 챙긴 혐의로(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로 2002년4월 구속됐다. 김씨도 2002년부터 2005년까지 기업 인수나 은행대출 성사를 도와 달라는 청탁과 함께 수십 억 원을 받은 혐의로 최근 구속됐다. 더욱이 이들은 출신지역도 비슷하다. 둘 다 호남 출신으로 정치권 주변에서 맴돌다가 김대중(DJ) 전 대통령 집권 이후 승승장구한 점도 흡사하다. 전남 영광 출신인 김씨는 1990년대 중반까지 기업체 대표로 일했지만 경제보다 정치쪽에 관심이 많았다.
정치·행정력이 강할수록 로비 활발
김씨는 1996년 이한동 당시 신한국당 고문의 특보로 정치권과 처음 인연을 맺었고, 이듬해 대선을 앞두고 DJ 캠프에 합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남 나주가 고향인 최씨도 만만치 않다. 1997년 DJ의 대외담당 보좌역으로 정계에 입문한 그는 이듬해 정권인수위원회에도 참여했다. 비록 주위의 견제로 청와대 입성엔 실패했지만 2000년 ‘DJ 정권의 2인자’로 불렸던 권노갑 당시 민주당 고문의 특보로 재기에 성공했다.
학력과 경력이 불분명한 것 또한 이들의 공통점이다. 김씨는 아서앤더슨 한국지사장 시절인 1998년 국내 언론과 인터뷰에서 “한국외국어대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받았다”고 밝혔지만 대학측은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최씨의 경우 “미국 버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고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스칼라피노 교수의 수제자”라고 주장했지만 이 역시 거짓말로 판명됐다.
그렇다면 게이트의 단골손님인 브로커와 로비스트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2000년 대한민국을 뒤흔든 두 여성의 사건을 통해 비교해 볼 수 있다. 국방부의 정찰기 도입 사업인 백두사업에 개입했던 린다 김씨(53)와 경부고속철도 차량 선정 로비 의혹에 관련된 호기춘씨(57)는 대규모 국책사업을 쥐락펴락했다는 점에서 온 국민의 관심을 모았다. 두 사람 모두 재력과 미모를 바탕으로 사업결정의 배후에서 로비를 했다. 호씨는 프랑스 알스톰사의 한국지사장과 결혼한 뒤 경부고속철도 선정사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은 달랐다. 호씨는 일반적인 브로커들이 처벌되는 알선수재 혐의로 징역 1년6월을 선고받았다. 자격이 없는데도 사업에 개입한 것은 불법이라는 것이다.
로비 양성화를 위한 법제정 검토
반면 김씨는 국가기밀보호법 위반 혐의가 적용돼 징역 1년이 선고됐다. 미국 무기제조업체 E시스템사의 공식 에이전트였기 때문이다. 직원이 자기회사에서 받은 돈은 알선수재죄 처벌 대상이 아닌 ‘정당한 월급’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호씨는 알스톰사와 공식 에이전트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다. 김씨도 당시 자신을 호씨와 비교하는 분위기에 대해 “나는 무기체계 전문가다. 호씨는 로비스트가 아니라 브로커”라며 불쾌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브로커보다 로비스트가 합법적인 영역에 가깝게 있지만 현재 우리나라는 로비 활동을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브로커와 로비스트 사이에는 교도소 담벼락만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들을 구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일부 의원들에 의해 추진되는 로비스트법 입법은 큰 관심을 끌 만하다. 지난해 7월 ‘로비스트 등록과 활동공개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한 민주당 이승희 의원(50)은 건전한 로비 활동과 브로커의 행위를 구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마약처럼 시장에 공개되지 않은 물건을 거래할 때 위험비용이 늘듯, 로비 활동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면 선의의 로비가 설 자리가 없어진다고 했다. 로비스트법은 곧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 상정돼 관련 공청회가 열린다. 이 의원 등은 연내 처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최근 국가청렴위원회가 로비 양성화에 대한 법제정을 검토하겠다고 밝히는 등 사회적 분위기도 무르익었다. 이 의원은 로비스트 윤리강령 마련과 로비스트 양성과 관련된 제도 보완 등에도 힘을 쏟기로 했다. 국회의원으로 로비 대상이기도 한 그는 “로비스트로 등록된 사람은 활동을 주무관청에 보고하도록 법안에 규정했는데, 이는 정책 결정권자가 누구를 만났는지 공개된다는 뜻이다”라면서 “지금처럼 합리적 이유 없이 학연·지연을 이용해 부당한 청탁을 하거나 사건에 개입하는 일이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손쉽게 일을 해결하려는 일부 경제인들의 구태와 한탕주의로 무장한 일명 ‘노랑봉투의 사나이’(로비스트 혹은 브로커)가 존재하는 한 게이트는 계속 일어날 전망이다. 실제로 서울 세종문화회관 인근 커피숍에는 지금도 노랑봉투의 사나이들이 ‘1조 원’ ‘10조 원’ 얘기를 심심찮게 하고 있다. 게이트를 향한 시한폭탄이 지금도 존재한다는 얘기다.
외국의
로비스트 유럽은 로비스트의 천국이다. 특히 유럽 의회는 로비스트가 활약하기에 더 없이 좋은 사냥터며 먹잇감이라는 애기가 종종 회자된다. 의회가 내린 결정은 25개 회원국 전체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관련 업계, 환경·소비자 단체들은 로비스트를 통해 의원들에게 입김을 넣으려 한다. 심지어 제너럴 모터스(GM),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미국 기업도 로비스트를 고용해 현지 사무실을 열었을 정도다. 일하기도 수월하다. 과학기술과 정보통신 등 의회가 까다롭고 복잡한 사안을 많이 다루다 보니 의원들이 모든 내용을 꿰뚫고 있기는 불가능하다. 세계적 로비스트로 알려진 마크 맥건은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전체 732명 의원 중 소프트웨어 독점권을 정확히 이해하는 의원은 고작 20명 정도”라고 말했다. ‘까막눈’ 의원은 누군가 도와주길 바라고, 이런 때 ‘친절한 과외교사’를 자청하는 로비스트가 반가울 수밖에 없다는 것. 로비스트에게 가르침을 받은 의원들은 시키는 대로 투표한다. 1만 5000명 로비스트 중 유럽 의회에 정식 등록한 사람은 4435명 뿐이며 대부분 불법으로 로비활동을 하고 있다. 미국의 로비스트는 대부분 전직 의원이나 행정관료, 변호사들이다. 수도인 워싱턴DC에서 활동하는 로비스트는 지난해 2만 6000여 명으로 10년 전에 비해 2배 정도 늘어났다. 공식적인 로비자금은 20억 달러가 넘는 것으로 전해진다. 영국도 로비스트 활동을 공개적으로 허용하지만, 고위공직자의 경우 직위에서 물러난 뒤 최소 2년간 로비스트 활동금지 규정을 두고 있다. 또 중국도 로비스트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곳이다. 실제로 지난 3월 10일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代)와 정치협상회의(政協)가 열린 중국 베이징(北京)이 로비스트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로비스트들이 전인대와 정협이 열리는 10일 간의 양회(兩會) 기간에 몰리는 것은 중국 전역을 대표하는 6000여 명이 한자리에 모이는 흔치 않은 기회인데다 주요 현안이 양회에서 심의·결정되기 때문이다. 중국 당국은 이들의 로비를 막기 위해 중국 28개 성(省)·시(市) 대표단에 숙식을 해결할 시내 호텔을 직접 지명하는 등 단속에 나서고 있지만 잘 먹히지 않았다고 현지언론 들은 전했다. 로비스트들은 주로 양회가 열리는 인민대회당 인근 고급 호텔과 식당을 이용해 대표들에게 로비를 벌인다. 로비스트들이 과열양상을 보이는 것은 중국이 '콴시'(關係·연줄)를 중시하는 사회인데다 주요 정책들이 대부분 인간관계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
<김재홍 기자 atom@kyunghyang.com>
[ 기사제공 ] 뉴스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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