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관광 '고랭지 감자의 진수와 청정계곡의 더위사냥'
可山 李孝石님 의 고향, 평창 계촌마을 가는 길 ‘동이의 나이만큼이나 오래 전에 허생원은 봉평장을 보고 잠을 자려 했지만 더워서 자지 못하고, 메밀꽃이 핀 개울가 물레방앗간으로 갔었다……’ <메밀꽃 필 무렵> 可山 李孝石님의 무대인 대화에서 10여분 거리에 있는 방림은 영월술익는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다. 오늘은 정보화마을이 도시민을 위해 마련한 ‘농촌체험’ 여행단이 평창계촌정보화마을로 오는 날~! 아침 일찍 마을로 향한다. 시간적 여유를 갖곤, 조금은 천천히 운전하면서 문학소설의 무대가 되었던 봉평장과 대화 장터, 그 간의 80여리 길을, 허생원과 김선달, 그리고 20여년 전에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물레방앗간에서 정분을 나누었던 그때의 아들인줄 모르고 대화 장터로 밤길을 걸으며 나누는 옛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좌청룡 우백호에 배산임수 농촌마을 어느덧 방림 삼거리에 다다른다. 오른쪽 10분 거리에는 대화가 있고, 왼쪽 안흥 방면으로 가면 찰옥수수와 막걸리의 고장인 계촌마을이 있는 곳이다. 1936년, 可山 선생이 30세에 단편소설을 쓴 6년 후 이승을 달리 하지만 않았어도, 후속편으로 계촌마을을 거쳐 제천까지의 여정을 그린, 이곳을 무대로 2편이 완성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강원도내 심산유곡 어디를 가든 맑고 깨끗한 하천과 우거진 숲들을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여느 마을과는 사뭇 다른 아늑함. 오손도손 정겹게 자리 잡은 지형은, 좌우에 아담한 산들이 둘러져 있고, 마을 앞에는 냇물이 흐르고, 흔히들 풍수지리에 능한 분들이 말하는 좌청룡 우백호에 배산임수를 골고루 갖춘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 귀한 서울손님맞이 준비에 바쁜 모습들이 보였고, 가로등 전주에는 환영 현수막까지 있었다. 이곳에서는 감자와 찰옥수수를 수확하여 저온 저장한 후 때때로 이어지는 주문에 택배로 보내주고 있었으나, 정보화마을이 구축된 이후 급속도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른 새벽과 늦은 밤 텔레비전에서 전해주는 뉴스가 전부였지만, 인터넷이 연결되어 실시간 모든 정보를 접하게 되어, 하루가 다르게 마을이 업그레이드 된 곳이다. 즐거운 맘으로 도착한 여행단~! 여행단은 서울에서 오전 7시 30분에 출발하여 찐빵의 원조인 안흥에 들러 새참으로 그만의 독특한 맛을 느끼고, 예정시간보다 30여분 늦게 도착했다. 전날, 자연이 그리워 황토민박에서 하룻밤을 먼저 보낸 가족과, 오늘 도착한 가족들을 포함하니 56명이나 되었다. 마을위원회와 방림면출장소, 평창군청의 직원분들이 내 고장을 찾아 주신 분들과 차례로 인사를 나누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뜨겁던 햇볕인데, 오늘은 뭉게구름으로 덮여 제법 그늘이 진다. 위원장의 오늘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과 이 고장 소개를 듣고 난 일행은 첫 순서를 위해 감자밭으로 향했다. 강변 모래땅엔 숨어있는 보물열매가! 계곡, 맑은 물이 흐르는 강변에 자리한 토질은 모래밭이어서 손으로도 흙을 뒤집을 수 있었다. 어른들은 옛 일들이 생각났는지 옆 골에 같이 자리 잡은 비슷한 연배분과 재미있는 추억담들을 나누며 감자를 캐고, 어린아이들은 흙 속에 열매가 숨어있는 것이 무척이나 신기했던지 연신 엄마와 아빠를 부른다. 제일 큰 감자를 캔 가족에겐 상품이 있었다. 모두들 큰 것 하나씩 들고, 줄을 서서 서로가 비교해 보곤, 자연스럽게 다섯 명으로 선별되었다. 비교하기 어려운 엇비슷한 굵기였지만 전문농업인의 눈에는 금방 1,2,3등이 가려진다. 1등은 가족이 모두 참석한 한병윤(6세)이네가, 2등은 보형수(63세, 강서구 화곡3동)씨가, 3등은 자연과 농촌, 그리고 소박한 프로그램이 마음에 들어 친구와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는 박윤미(23세, 인천 남구 용현동)양이 차지하여, 특별히 피망과 곤드레 그리고 고추가 가득 담긴 선물이, 나머지 참여 가족에겐 손수 캔 감자가 선물로 주어졌다. 잠시 밭에서 일을 해서인지 땀으로 범벅이 되어 바로 옆 냇가에서 옷을 입은 채 풍덩풍덩 들어가 더위를 식혔다. 먹구름이 밀려오더니 이내 세찬바람과 함께 굵은 소낙비가 쏟아졌다. 열기로 달구어진 몸들은 시원하게 내리는 비 덕분에 더위를 잊을 수 있었다. 올창묵과 감자전 점심준비에 바쁜 손길이 움직이고 있었다. 밭에서 캔 감자를 강판에 갈아 솥뚜껑을 엎어 기름칠한 판에다 한 주걱씩 얇게 펴 올려두면, 금방 감자전이 만들어지고 있다. 아이들은 이웃집 할머니들이 하는 솜씨를 가만히 보더니 "할머니, 저도 해 볼께요!" 하면서 이내 여러 명이 감자를 갈아보고 부치기를 구워보았다. 장작불 가마솥에서는 방금 꺾어 온 찰옥수수가 익어가고 있다. "한 시간 이상 푹 익혀야만 제 맛이 나게 된단다."라면서 비를 맞아 추워진 몸을 따뜻이 하기 위해 둘러 앉은 아이들에게 일러준다. 감자부침이(부침개)가 구워지는 대로 고춧가루와 참기름이 동동 뜨는 간장에 찍어먹는 맛, 특히 조금 더 파삭하면서도 눌어붙게 구워진 끝부분이 맛이 있다. 옥수수를 갈아 묽게 끌인 것을 사각 틀에, 밑에는 젓가락 크기만하게 작은 구멍을 빠져 나와 찬물에 떨어지면 흐트러지지 않고 국수로 되는데, 이것을 ‘올창묵’이라 한다. 연세 있는 분들이야 많이들 드셔보았겠지만 젊은이들과 어린아이들은 이런 시골이 아니고선 맛을 볼 수가 없다. 시큼한 김치를 송송 썰어 양념간장에 간을 맞춰 먹기 시작하면 1분도 안되어서 다 먹게 되는 것이 특징! 그 맛은 과히 일품이었다. 모놀과 정수(cafedaum.net.monol4), 들려준 정겨운 음악파티 찰옥수수가 가마솥에서 익어가기 시작한지도 반시간이 지났다. 어디선가 귀에 익은 기타 소리가 들려오더니 이내 향기로운 노래가 들려온다. 아이들과 일행이 자연스럽게 모여들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다음넷 카페 여행모임에서 일곱 분이 오셨다고 하더니, 환갑이 넘은 분과 중년층이 팀을 이뤄 아름다운 목소리로 화음을 맞춰 들려주는 노래들. 떠나갈 듯 한 박수와 재청에 어린이들은 덩달아 신이 났다. 아이들과 함께 부르기 위해 동요를 연주하니 모두가 합창을 할 수 있었다. 프로그램을 진행해야 하는 정재현(30세, 운영위원)씨는 족대와 비료푸대로 만들어진 바구니를 나누어 주곤 바로 옆 개울로 앞장섰지만, 노래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듯 뒤따라오면서도 노래를 부른다. 계촌계곡의 물고기와 얼음물 마을 뒷산에서 흘러내린 계곡물은 너무도 맑았고 물은 차가웠다. 땅 속, 깊은 샘에서 금방 솟아 오른 약수처럼 깨끗하다 못해 푸르게 보였다. 아이는 족대를 받치고 아빠와 엄마는 돌을 제쳤다.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다. 한두 마리씩 잡히기라도 하면 탄성이 쏟아 지면서 이내 아이들의 많은 질문에 부모들은 답변이 궁색하여 자꾸만 마을에 살고 있는 분들에게 눈길을 준다. 아이들은 물에서 재미를 느꼈는지, 동해안 바닷가 해수욕장에서는 볼 수 있는 수영복으로 갈아입곤,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냇물이 너무도 차가웠던 모양이다. 입술이 파래지더니 덜덜 떨면서도 밖으로 나오길 싫어했다. 보다 못한 부모가 대리고 나왔지만 추위에 견디기 어려웠던지 즉석 보온 옷을 만들어 입혔다. 어른들마저 차가운 물에는 안되겠던지, 잡은 고기를 들곤 맛있는 찰옥수수가 기다리는 식탁으로 돌아왔다. 압력솥에 밀가루로 만든 수제비와 방금 잡은 물고기를 넣었다. 조금만 기다리면 맛있는 매운탕이 되기 때문. 찰옥수수와 매운탕 옥수수가 다 익은 가마솥 주변은 아이들이 차지하고 둘러 앉았다. 장작불에 추워진 몸을 녹이기 위해서이다. 옥수수를 하나씩 들고는 먹기 시작한다. 물에서 허우적거리면서 고기잡고, 텀벙거려서인지 모두들 배가 고팠던 모양이다. 옥수수가 바닥나고, 연이어 나온 감자떡 한 솥도 모자랐다. 아이들은 모자라는 감자떡을 더 만들기로 한다. 손수 만들어 보는 재미에 흠뻑 빠져 있다. 한 솥 되게 떡을 시루에 안치곤, 매운탕에 눈길이 간다. "어떻게 먹어…어떻게 먹어…" 하면서도 고추장 풀고 갖은 양념에 버무려진 매운탕 맛에 금새 한 그릇씩을 비웠다. 이제는 좀, 몸에 열기가 도는 모양이다. 또다시 도시생활로, 돌아가는 아쉬움 떠나야 하는 발걸음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방림면 직원분들과 운영위원분들…일일이 이별을 나누며, “처음 시작한 프로그램이라서, 만족할만하게 해 드리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면서, 부족한 부분을 더 담겠다는 작별 인사말에 박수로 격려를 보낸다. 오늘의 프로그램 진행에 혹 차질이라도 생길까 노심초사하던 신철호(평창군청 자치행정과)씨는 “도시에서 오신 가족 분들이 많은 이해와 협조로 무사히 마치게 되었다”라며 오늘의 과정을 시간대별로 점검하여 향후 보다 더 알찬 시간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떠나가는 버스에 올라 탄 어린이들은 색다른 시골정취에 너무 취해 지쳐서인지 금방 잠이 들고. 떠나가는 버스를 그 끝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아쉬운 이별의 손을 흔들고 있는 마을 분들을 뒤로 하곤 기자도 집으로 향했다. 굽이굽이 냇가를 돌아가 평창 장터에 머물렀더니 이 마을 주민이 1,600여명. 그 분들을 보듬어 안은 지도 68년이 지난 초등학교엔 연륜을 한눈에 보여 주는 듯 고목이 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운동장 한 쪽에 서 있었다. 주민들은 모두가 이곳에서 어린 학창시절을 보냈고 나무와 함께 하면서 마을을 가꾸고 지켜온 분들, 모두가 동문들이다. 이처럼 더욱더 끈끈한 정으로 맺어진 이웃들이기에 모처럼 찾아온 외지인들에겐 친절이 몸에 베어있는지도 모른다. 굽이굽이 냇가를 따라 나있는 작은 시골길가에는 해바라기꽃과 이름 모를 들꽃들이 만발해 있었다. 마을이 산속 깊은 곳에 자리해서인지 아직은 도시인들이 시골토지에 욕심을 낸 흔적들은 없어 보인다. 냇가 주변 너른 땅에는 잡초들이 무수한 것을 보니 휴경지도 많이 눈에 띤다. 마땅하게 많은 인원이 휴가를 즐길 수 있는 군청소유의 공유공간이 필요함이 느껴진다. 아직은 외지인들의 투기열풍이 때묻지 않은, 냇가 공간들을 잔디구장으로 개발하여 자연과 함께하는 휴식공간으로 제공한다면, 마구잡이 계곡놀이문화를 통제할 수도 있을 것이고, 하천을 오염시키는 음식물 취사행위와 여름한철 쓰레기 대란을 막자면, 그것이 가장 합리적인 대안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오늘이 마침, 매 5일마다 열리는 평창 장날이라 장터에 들렀다. 출출해진 배도 채울 겸 푸짐한 시골인심이 가득한 장터를 구경하고 싶어서이다. 나이 드신 할머님들의 작은 산나물 보따리와 약초, 만물상이 따로 없이 온갖 것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통로 공간에선 밝은 대낮이었지만 조명이 어두워 카메라의 플래시를 사용해야만 했고 바닥 청결의 대명사인 넙적 넙적한 타일이 바닥에 깔려 있었으면 하는 점이 아쉬웠지만, 떡 방앗간 옆을 지날 땐 고소한 참기름 짜는 냄새에 배가 절로 부르고, 메밀부침이 전문점에서 발길이 멈춰졌다. “한 소뎅에 500원~!” 욕심에 1만원어치나 주문하곤 다 먹지 못해 싸 들고서 장터를 벗어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