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눈사람', 이진영 선생님 수필집 『나도 춤추고 싶다』
이진영 선생님 수필집 『나도 춤추고 싶다』66쪽 '고독한 눈사람'편
고독한 눈사람
눈사람이 홀로 서 있다. 눈옷을 입고도 추운 기색이 없다. 우뚝한 콧날에 부리부리한 눈매, 아버지의 헌 중절모 비스듬히 눌러쓰고 당당하게 버티고 선 모양새가 제법이다. 눈사람은 금세 음직이기라도 할 듯이 보였다.
어느 해인가. 서울 근꾜 뜰이 넓은 집에서 살던 때이다. 아직 아버지도 어머니도 살아계실 때이니 20여 년 전은 족히 넘을 듯싶다. 난 그때 긴 투병생활 중, 아직 털어버리지 못한 어제의 생생한 기억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또한 채 받아드리지 못한 오늘의 아픔 때문에 외부와 높은 담을 쌓고 살아가고 있었다.
눈이 내렸다. 아침부터 짙은 회색빛 캔버스를 넓게 펼치고 있었던 하늘은 한 송이 두 송이 꽃잎처럼 눈발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곧 제법 굵게 펑펑 소리를 내면서 하늘 전체를 하얗게 채우고 있었다. 금세 온 세상을 흰 물감으로 스륵스륵 붓질을 해대듯이 덮어버렸다.
정원수들은 눈부신 눈꽃을 피웠고, 아버지는 가래로 대문 앞 눈을 치우시기 바빴다. 대문 곁에 유일하게 나의 외부 통로가 되는 우체통도 하얀 눈으로 덥혀져버렸다. 난 창밖 눈 풍경을 한참이나 물끄러미 바라다보고 있었다. 동네어귀 사람들 소리, 새소리, 모든 소리마저 송이 눈 속에 파묻힌 듯 사방이 적요했다. 펑펑 쏟아지는 눈의 기척만 주위를 맴돌았다.
눈은 영영 그치지 않을 듯이 내렸다. 쌓이고 또 쌓여서 울을 넘고 지붕을 덮어버리고 하늘향한 나무 가지 끝마저 눈 속에 잠겨버린다면... 오랫동안 약한 몸으로 지내온 탓이라 여겨진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차라리 그저 하얀 세상 속에 다 묻혀버릴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한 것이 추한 모든 것들을 덮어버리는 상태가 영원히 존재할 수 있다면, 세상과의 단절이라는 극단적인 의미를 받아들여도 좋으리라는.
얼마 후 깊은 생각 속에서 부스스 몸을 일으켜 세운 나는 털모자에 장갑, 목도리로 단단히 무장을 하고 뜰로 내려섰다. 그리고 눈을 뭉쳐 굴리기 시작했다.
‘눈사람을 만들어 보리라.’
신나게 눈사람을 만들만큼 어린 나이도 아니었다. 냉하고 습한 기온을 오래 감당할 만큼 튼튼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밀린 방학과제물을 해야 하듯이, 누군가가 등을 떠밀 듯이 눈사람을 만들기 시작했다.
큰 눈덩어리를 세우고 다시 작은 눈덩어리를 굴려서 그 위에 얹었다. 눈을 모두 세 덩어리를 얹었다. 키 큰 눈사람을 만들고자 하는 바람이었다. 더 높은 곳을 바라보게 해주고픈 바람이기도 했다.
눈덩이 위에 또 눈덩이를 얹어야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이 일은 아버지의 도움을 받았는데, 아버지도 실은 나의 하는양을 지켜보시면서 꽤 흥미로운 눈초리를 보내고 계셨기 때문이다. 펑펑 내리는 눈을 맞으면서 눈빛처럼 머리 하얗게 세신 아버지와 어리지도 않은 딸이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함께 눈사람을 만들었다. 나는 얼굴 부분의 눈 덩어리를 흡사 조각가라도 된 듯이 다듬어서 눈과 코를 만들었다. 깊숙한 눈매는 작은 슬픔에도 금세 눈물을 쏟을 듯했고, 망대처럼 우뚝한 콧날은 접을수 없는 자존심을 지닌 듯했다. 마당 한 가운데 반듯하게 자리를 잡고 세워놓은 눈사람은 당당해 보였다.
차갑게 젖은 손을 털어내고 허리를 펴면서 눈사람을 건너다보았다. 그 순간은 흡사 진흙덩이로 아담과 이브를 만들어 내신 조물주처럼 경건한 마음까지 들었다. 조각가가 자신의 완성된 작품을 감상하듯이 의미심장한 눈으로 건너다보고 또 건너다보았다.
어김없이 하얀 세상에도 밤이 내려왔다. 어둠과 하나 되지 못한 눈사람은 침묵 속에 하얗게 홀로 존재했다. 고독한 걸까? 가끔 몸을 푸르르 떠는 듯 보였다. 그러나 그 냉기서린 고독이 그가 지닌 형태를 지탱하는 힘이 되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으리라.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갔다. 눈사람은 처음 서 있던 모습에서 조금씩 무너져 내렸다. 기우뚱하고 서 있는 자세가 사뭇 불안했다. 바람 든 무에 구멍 뚫리듯이 송골송골 녹아내리는 표피는 햇살을 받아 자꾸 창백해져 갔다. 깊숙한 곳에 말 못할 몹쓸 병이라도 숨겨두었는지, 통통했던 볼살도 빠지고 불룩하게 나온 배, 풍채 좋던 몸매도 슬금슬금 여위어 갔다. 결국 눈사람은 어이없이 주저앉아 한 줌 얼룩진 시간 짙게 밴 눈물만 흘렸을 뿐이었다.
그러나 눈사람은 그때까지 살아 있었다. 남루한 중절모는 이미 땅에 떨어졌고 뚜렷하던 이목구비도 형태를 분간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는데, 분명 눈사람이 살아 있다고 믿었다. 움직임이 있는 존재란 살아있음을 의미한다. 모든 형태의 변화는 존재의 의미를 뒷받침 해주는 것이다.
눈이 그쳤다. 모든 생존하는 삶의 끝처럼, 눈사람의 삶도 끝났다. 세상은 다시 흰 너울을 벗어버리고 감추어졌던 자신의 색을 드러냈다. 쓸쓸했다. 잠시 그가 머물렀던 빈자리가 흔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눈물이 되어 흘러내린 그 자리에 봄날이 다시 싹을 돋우리라는 바람을 접지 않았다. 살아있다는 건 형태를 버린다 해도 접을 수 없는 희망은 남아 있기 때문이라는, 눈사람이 건넨 말 한 마디가 채 녹지 않고 내 가슴에 여전히 우뚝 서 있기 때문이다. 삶이란, 순환이라는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깨달음이기도 했다.
살아온 날들 속에 내가 만들었던 눈사람처럼, 그 냉엄하고 차가운 고독이 더러는 나를 지탱하게 하는 힘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또 텅 빈자리의 쓸쓸함이 다시 나를 일으켜 세우는 희망이었다면, 오늘 난 문득문득 다가오는 그 쓸쓸함을 결코 내 곁에서 밀쳐내지 않으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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