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 선생님 수필집 『나도 춤추고 싶다』
그림으로 크는 나무
내가 태어났을 때 그는 퍽 싱그러운 모습의 소년이었습니다. 으쓱으쓱 하늘을 향해 키재기를 했고 나는 그 푸른 그림자를 밟으면서 서툰 걸음마를 시작했죠.
엄마 등에 업혀 잠을 청하던 내게 스쳐가는 바람을 조심스레 불러 주었던 이도 그였습니다. 나는 잠결 내내 그의 부드러운 몸짓과 잔잔한 바람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는 사금파리며 조가비 따위의 어설픈 살림살이를 늘어놓고 소꿉놀이를 하는 내게 빙긋 웃음을 지으며 서늘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속 깊은 친구였죠.
봄이면 풋풋한 연둣빛 옷으로 갈아입는 그처럼 s도 새 옷을 해 달라 떼를 썼습니다. 하늘하늘 가벼운 몸짓으로 그의 곁을 맴돌며 춤추는, 봄 같은 내가 그와 함께 봄 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새 그는 진초록 옷자락을 펄럭이며 거친 바람도 후드득거리는 빗줄기도 작열하는 햇살도 너끈히 받아낼 만큼 강해져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나와 함께 자랐습니다. 내가 해마다 그의 투막하고 두터운 등허리에 금을 그어 한 뼘씩이나 자람을 뽐내듯이, 둥근 나이테를 더해 가면서 힘찬 가지들을 보기 좋게 뻗어 나갔습니다. 내가 청군한 모습의 소녀로 성장한 것처럼, 그도 튼튼한 몸매를 내 한 팔로 둘러 안기에 벅찰 만큼 건장한 청년으로 성장했습니다. 잎사귀 무성하며 곧게 자란 수려한 가지들은 흡사 하늘이라도 받쳐줄 듯이 든든한 폼이었죠.
그는 멋진 자태를 지닌 수나무였죠. 충실하게 수꽃을 피워 주위의 암나무들에 열매를 맺게 해주었건만 칭찬 한 번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도 묵묵히 할 일을 했다는 듯이 생색내는 법도 없습니다. 그저 먼발치서 성장한 자식들을 대견스럽게 바라다보는 우리 부모님처럼, 풍성한 열매들에 뿌듯한 눈길만 보냈습니다.
나는 그의 든든한 팔에 매어놓은 그네를 몹시 좋아했습니다. 그네에 앉아 흔들거리면서 『소공녀』와 『소공자』도 읽었고,『백설공주』나 『신데렐라』의 이야기도 읽으며 내가 동화 속에 주인공이 된 듯 꿈을 꾸어 보기도 했습니다. 엄마에게 야단맞고 울면서 그에게 하소연도 했습니다. 더러는 100점 맞은 시험지나 생일 선물을 들고 나와 자랑도 했죠. 그는 다독거리듯이 나뭇가지를 아래위로 흔들어 주었고, 바람결에 고운 잎사귀들을 가만히 떨어뜨려 간질이기도 했습니다.
칭얼대는 어린 조카를 달래 주던 곳도, 시장에 갔다 오시는 엄마의 장바구니를 기다린 곳도 모두 그 나무 그늘 그네에서였습니다. 그넷줄은 푸른 잎처럼 청청한 나를 하늘로 솟았습니다. 바람 따라 수런거리는 나뭇잎들의 격려를 받으면서 더 높은 하늘을 향해 거침없는 내 꿈도 솟구쳤습니다.
그렇게 나는 언제나 싱그러운 오월 속에 머물 듯이 아름다운 소녀 시절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진 비바람 불면 나뭇가지들이 몸부림치며 휘청거리듯이 내 젊은 날의 하늘도 늘 맑고 푸른빛만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무렵 자신의 마음처럼 친구를 믿으시다가 사업에 큰 실패를 보고 가세도 휘청이게 되었습니다.
그 해 가을입니다. 휘익~ 바람의 결이 달라졌습니다. 바람의 색이 변했습니다. 그저 무심히 스치는 듯하나 무성한 잎들의 푸른 물기를 거두고, 또 다른 빛깔을 부여했습니다. 계절의 변화가 주는 교훈은 떠나야할 때를 아는 깨달음이죠. 앞만 보고 달려왔던 이들에게 뒤돌아보게 만드는 숙연함도 있습니다.
한 해를 마친 보고서처럼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노란 잎들은 마당 가득 수북이 깔렸습니다. 매일 이른 아침 이런 저런 사연을 쓸어내듯이 묵묵히 마당을 쓰시는 아버지의 어깨 위에는 아직 어린 우리 힘으로 덜어드릴 수 없는 무거운 시름이 등짐처럼 얹혀 있었습니다. 설상가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불행은 도미노게임처럼 이어서 모두를 쓰러뜨리나봅니다. 난 그때 갑자기 쓰러져 온몸 한 부분도 움직이지 못하고, 흡사 잘려진 나무토막처럼 그렇게 누워만 있었습니다.
날선 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던 그 겨울날을 우리 가족은 참 춥게 보냈습니다. 그리고 봄날이 오기도 전에 기어이 은행나무가 있던, 내가 태어나서 자라난 집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이사하는 날 아침, 아버지 등에 업힌 채 아직 겨울잠에서 깨어나지도 못한 은행나무 곁에서 오랫동안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습니다.
自歎年來刺骨貧
吾廬今巳屬西隣
慇懃說與東園柳
他日相逢是路人
요사이 뼈에 스민 가난 때문에
이웃 사람에게 집을 팔았네
동쪽 뜰의 버드나무 속삭이기를
후일에 나를 남 보듯 하지 말랬네.
송(宋)씨 일명(佚名)의 『육려』라는 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난 약속했습니다.
“꼭 다시 올게, 너를 보러”
그리고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렀나요. 그를 보러 가지 못했습니다. 다시 그 뜰에서 꼭 함께 살리라던 약속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사 온 얼마 후에 새 주인은 열매도 맺지 못하는 나무가 잎만 무성하여 그늘을 만든다고 무참하게 가지를 쳐주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아팠을까요? 얼마나 우리가 보고 싶었을까요? 아마 그도 빈 바람 소리 끌어안고 나처럼 숨죽이며 울었을 겁니다.
길을 가다가 어는 길모퉁이에서 두 팔을 벌린 채 부채꼴 모양의 잎사귀들을 가득히 안고 서 있는 은행나무를 보면 문득 나의 뜰에서 나와 함께 자라던 그가 생각났습니다. 더러는 불볕처럼 따가운 고달픈 삶의 반복 속에서 그의 서늘한 그늘이 그리웠습니다. 숨죽인 바람을 안고 다가오던 부드러운 몸짓이 그리웠습니다. 흠사 등불을 켜놓듯이 내 삶을 환하게 비춰주던 잎사귀들의 샛노란 가을 옷이 그리웠습니다. 가지 한 가닥에 매단 그네. 우리의 힘찬 몸짓 탓에 심한 어지러움을 말없이 참아 주던 그의 넓은 가습이 그리웠습니다.
그리움의 가지가 무성할수록 뿌리는 더욱 깊은 곳으로 뻗어내려 갔나봅니다. 때론 그 무수히 뻗어 내린 뿌리가 날카로운 가시처럼 뾰쪽이 날을 세우고 가슴 속으로 파고들었습니다.
그러나 또 때론 힘겨운 삶에 지친 내게 윗가지를 넌지시 흔들어 싸한 페퍼민트 향기를 전해주기도 합니다. 햇살이 눈부신 날에는 바람을 불러와 잎사귀들의 황홀한 군무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감당할 수 없는 절망 속에서 허우적거릴 때면, 가지 끝에 다시 새순 같은 희망을 걸어두라고 속삭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그리움으로 크는 나무. 그는 애 가슴속에 여전히 우뚝 서 있습니다. 꺾여도 다시 움트는 은행나무처럼, 뜨거운 불길에도 쉽게 제 몸을 태우지 않는 은행나무처럼, 그를 닮고 싶어서, 그처럼 살고 싶어서, 여기 이렇게 나도 나무처럼 꿋꿋하게 서 있으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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