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엿보는 나, 이진영 선생님 수필집 '나도 춤추고 싶다'
나를 엿보는 나
오늘 복잡한 전철 안에서 편안히 앉을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달려오는 전철, 차창 밖에서부터 점찍어 두었던 좌석을 향해 문이 열리기 무섭게 잽싸게 몸을 날렸다. 그 순간은 평소 둔한 몸짓의 내가 그렇게 날렵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흡사 먹이를 발견한 맹수와 견줄 만도 했다.
전철의자에는 일곱 사람이 앉을 수 있다. 두 뼘 남짓한 공간을 차지한 것이 이 순간 나에게 그리도 큰 기쁨과 만족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거듭 감탄하고 있는 중이다.
맞은편 좌석, 일곱 명의 나처럼 행복한 이들을 건너다본다. 맨 끝에 앉은 대학생인 듯한 남자는 뭐가 그리도 피곤한지, 입까지 벌리고 곁의 아주머니 어깨에 기댄 채 곤한 잠에 빠져있다. 곁의 아주머니는 가끔 그 무게가 짐스러워 어깨를 피해보지만 이내 그 무게보다 더 단잠의 무게 탓에 역시 눈이 감겨져 있다. 그 옆에는 한 아가씨가 배꼽이 흘깃흘깃 드러나는 웃옷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는데, 그 길이가 하도 짧아서 넓적다리 까지 다 드러나 보기가 민망하다. 또 그 옆에 한 아기엄마는 먹던 과자 봉투를 옆에 슬그머니 내려놓는다. 모두 나의 눈길을 전혀 의식조차 하지 않은 채였지만, 난 그들의 움직임을 주위 깊게 보며 긴 시간 주행의 단조로움을 나름대로 달래고 있었다.
언젠가 ‘몰래카메라’라는 TV프로가 있었다. 본인이 모르게 미리 설치한 카메라로 행동을 관찰하는 것이다. 남을 의식하지 않는 행동을 엿본다는 사실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으로 인해 퍽 인기 있는 프로였다. 타인을 의식하지 않는 행동은 얼마나 자유스러운가. 남의 행동을 엿본다는 건 또 그 사람의 시간 속에 내가 들어선 것처럼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르겠다.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면서, 자신을 헤아리기 시작할 수 있는 즈음에 이르러서부터는 늘 타인의 눈길을 의식해야 했다.
‘남들이 보는데.’
‘남들이 뭐라겠어.’
‘이런 행동은 상식적이지 못해…….’
그 남의 눈으로 인해 얼마나 숨이 막혔는지 모른다.
타인이란 세상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동안 늘 의식해야할 대상이다. 그러나 그 의식에서 잠시 벗어나서 자신만을 위해서 하는 행동은 평소와 다를 수밖에 없다. 그걸 엿보는 것이 무척 재미있다는 거다. 그 사람의 꾸며지지 않은 본성을 들여다 볼 수 있어서 흥미가 가중된다.
요즘은 사방에 몰래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 교통위반 때 반짝 터지는 카메라, 은행에 설치되어 있는 폐쇄회로 화면, 엘리베이터 안에도 도난방지를 위해서 설치한 카메라가 있다. 얼마 전에는 바로 이것으로 인해 뇌물을 주고받는 일에 단서를 잡았다고 한다. 또 지하철 역사에서 강도 사건을 위장한 무명가수의 자작극이 몰래카메라에 의해 발각이 났다. 사람을 속일 수는 있어도 기계를 속일 수는 없었나 보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매장 안 구석구석 심지어는 화장실까지 카메라를 설치했다니. 그뿐인가 내가 타고 가는 이 전철 안에도 테러방지를 위해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을 것이다.
친구가 우스갯소리를 한다. 전에는 인간들의 수가 적어서 하나님이 죄를 짓는 자나 착한 자나 다 내려다 볼 수 있었는데, 이제 그 숫자가 많아지다 보니 세상 구석구석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놓으시고 살필 수밖에 없다는 거다. 어디 그뿐인가 보이지 않는 가슴 속까지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훤히 살피시고 있다면…….야, 이건 정말 두렵기까지 하다.
사방을 두리번거려 본다. 그 누군가가 나의 이런 행동을 몰래 보고 있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빈자리를 향해서 날아오듯이 날쌔게 몸을 던지는 나의 우스꽝스러운 행동에 크게 웃었을는지도 모른다. 눈을 끔뻑이면서 앞자리의 승객들을 감상하고 있는 나의 점잖지 못한 행동이 이 안에 설치된 몰래카메라에 포착되어 있을 것이다. 결국은 몰래카메라의 성능은 점점 더 좋아지고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어느 곳에나 설치될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기계가 만들어 놓은 우리 안에 갇혀서 기계에 의해서 감시당하고 살아가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러나 문득, 이런 바람을 가져 본다. 내가 나를 엿볼 수 있겠다면 좋겠다는, 삐뚤어진 행동이나 바보스러운 짓을 하지는 않나? 힐끗힐끗 주위를 돌아보면서 공원에서 꽃을 꺾기도 하고 줄서기에 새치기하고 시침을 뚝 떼고 서 있지를 않나, 뷔페식당에서 어머니 드리려고 떡을 슬그머니 싸가지고 오지를 않나……. 내 가슴에도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가끔 되돌려보는 거다.
‘어두운 방에서도 스스로 속이지 않는다.’(근사록)
옛 성인의 말씀처럼, 몰래카메라나 어느 누구의 눈길을 두려워하기 전에 늘 나를 돌아볼 수 있는 밝은 눈을 지니도록 노력하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나를 보는 나’ 남을 엿보는 것은 심심풀이에 지나지 않을 수 있지만, 나를 엿볼 수 있음은 최고의 삶의 지혜가 아닐까 싶다. 행여 남이 설치한 몰래카메라에 찍혀 웃음거리와 비방을 받기 전에, 내가 나를 살펴 고쳐갈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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