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이불, 이진영 선생님 수필집 '나도 춤추고 싶다'
솜이불
꼿꼿하게 풀 먹인 무명 홑청, 포근한 솜이불 안으로 고단한 하루를 벗어던지고 몸을 밀어 넣을 때면, 그 차근거리는 감촉이 낯설어서 한동안 몸을 움츠려야만 했다. 그러나 매일 저녁 그 낯섦을 가슴에 끌어안고 잠재웠다. 아침이면 어제의 낯섦은 익숙함으로 바뀌고 그 속에서 느껴지는 따스함이 날 잡고 놓지 않았다.
서걱서걱 소리 나는 무명 홑청의 솜이불이 나의 온기로 서서히 풀죽고 따스하게 데워져가는 과정이 싫지 않았다. 흠사 차갑고 서먹했던 상대가 시간이라는 기차를 타고 함께 달리면서 헤어지기 싫을 만큼 정이 들어버리는 것처럼... 어린 시절 솜이불의 추억이다.
할아버지네는 꽤 넓은 목화밭이 있었다고 한다. 딸들 시집 갈 때 쓴다고 좋은 것으로만 골라 두었던 터라, 어머니가 시집오니 큰 독들에 목화가 가득 하더란다. 고모들 시집보낼 때 솜을 틀어 이불, 요 꾸며주고, 큰언니 태어나서 햇솜 두어 포대기 만들어주고, 또 큰언니 시집보낼 때 이불, 요 꾸며 보내고 그렇게 쓰다가 남겨두었던 솜으로 만든 이불과 요가 몇 채 남아 있었다.
언제인가 아파트로 이사를 오고 침대를 들여놓았다. 아랫목도 윗목도 없이 똑같이 따스한 방, 겨울이면 매몰찬 바람 헤집고 들어서던 창가를 가려주던 문풍지도 커튼도 크게 필요하지 않았다. 서둘러 빛깔 좋은 모포와 화학솜 이불을 새로 장만하여 침대를 꾸몄다. 매일 이부자리를 펴고 개키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고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저녁이면 그대로 따스한 침대 속은 날 반기는 듯이 편안했다. 새의 깃털처럼 덮은 듯 만 듯 가벼운 이불을 덮고 잠을 청해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불장을 가득 채웠던 두터운 솜이불들이 짐이 됐다. 봄가을이면 연중행사처럼 솜을 틀고 무명 홑청에 풀을 먹여 다듬고 한 뜸 한 뜸 꿰매서 새로 침구를 꾸미던 어머니가 세상을 뜨신 지도 한참 됐다. 나는 어머니의 솜씨를 이어받을 만큼 부지런하지도 손끝이 날렵하지도 못하거니와 새로 나온 화학솜의 가벼움과 물빨래도 가능한 실용성에 반해 있었다. 이불장 속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솜이불들을 아쉽지만 버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방안에 펼쳐놓고 이것저것을 고르다 말고 문득 그 이불을 한번 덮어보고 싶어졌다. 예전에 이불을 새로 꾸밀 때다 방안 가득 펼쳐놓고 마무리하신 후 허리를 펴면서, 지켜보는 어린 나에게 “네 이불이다, 덮어보련” 하시던 따스한 어머니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해서이다. 그 목소리엔 꾸미는 과정의 수고보다는 내게 서둘러 새 이불을 덮게 해주고픈 마음이 가득 담겨져 있었다. 그런 날 저녁이면 난 설레는 마음으로 새 이불을 덮고 누웠다. 무명 홑청 버걱거리는 이불 속은 차갑기는 했지만 선선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기분 좋은 꿈을 꿀 것만 같았다.
그 시절 깊은 겨울밤이면 얼어붙은 바람이 위~잉 소리를 내면서 앙상한 가지들을 흔들어댔다. 시린 먹빛 하늘이 토해내는 하얀 입김이 땅 위로 내려앉았는가. 이른 새벽이면 발치에 떠 놓은 자리끼가 소복하게 얼어 올라온다. 유리창엔 얼음꽃이 만발하고 설산은 눈부셨다. 도톰한 솜이불 속 나는, 이 세상 어느 곳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궁전에 머물고 있는 듯 빠져나오기 싫어서 허우적거렸었다.
솜이불 속 편안함은 어머니 품안 같았다. 피곤하고 힘든 하루를 기대어 쉬고 싶은 따스한 품, 가끔 견디기 어려운 아픔 탓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큰소리로 울어대도 꼭꼭 감싸 안고 도닥거려주는, 그 눈물까지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속 깊은 어머니를 닮았다. 어쩌다 건네주는 햇살과도 같은 우리들의 함박웃음에 깊은 가슴 속까지 젖어든 시름을 모두 말리고, 포근한 가슴 다시 열어 우리를 품어주시는 어머니 모습이었다.
그렇게 목화솜은 우리의 땀을 흡수한다. 숨을 쉬지만 따스함을 내뱉지 않는다. 언제까지나 감싸 안고 있다. 다시 틀어 꾸미면 새 이불처럼 포근해진다. 그러나 화학솜은 가볍지만 땀을 흡수하지 못한다. 감싸 안는 미덕이 아니라 외부와의 차단이다. 상대편의 결점을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모두 표면으로 드러내는 속 깊지 못한 이를 닮았다. 세탁의 편리함을 내세우지만 그 편리함 속에는 어제를 쉽게 잊고 내일을 빠르게 시작하는 가벼운 이들의 모습이 있다. 그래도 어느 누가 요즘 가볍지도 간수하기도 힘든 솜이불을 덮겠느냐고 하겠지만, 어머니가 남겨놓으신 솜 중 얼마큼을 버리지 않고 새로 틀어 이불과 요를 한 채 꾸미기로 했다. 물론 스스로 할 수 없어서 이불집에 맡겨야만 했지만, 이전 겨울처럼 위풍이 세지 않으니 솜을 얇게 두어 가볍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러던 얼마 전에는 크게 결심하고 침대를 치워버렸다. 편리함이 좋긴 했지만 보이지 않는 침대 속 진드기나 늘 안고 사는 허리통증에도 좋지 않다는 판단에서이다. 방바닥에 솜으로 만든 요를 깔고 자리라 마음먹었다. 매일 펴고 개키는 수고로움이 번거롭다고는 하지만, 잠자리를 준비하고 또 개키는 과정에는 오늘 하루를 뒤돌아보고 마무리 하는 시간과 하루를 계획할 수 있는 시간이 포개져 있다. 그 수고에 좋은 꿈을 예견하는 설렘과 하루를 여는 기대를 덤으로 얹어 주고 싶다.
푸근한 요에 등대고 누워 천정을 본다. 천장이 한결 높아졌다. 흡사 나를 낮추고 상대를 높여주니 마음도 눈도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힘겨운 삶, 상처입고 지친 나를 받아들여 감싸 안아주는 듯한 솜이불 속에서 꿈을 꾼다. 오늘의 낯섦을 내일의 익숙함으로 바꿔지도록 매일 매일 최선을 다하는 하루를 보내는 거다. 가끔 힘들고 우울할 때면 눅눅해진 마음을 햇볕에 말려보리라, 다시 새로운 나를 만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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