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투
축하할 일에는 축하를 해야 하고
조의를 표해야 할 일에는 조의를 표해야 하는데
방법은, 몸으로 때워서는 아니 된다고 봉투가 입을 벌린다.
옛날 내 어릴 적에는
가족과 친지들이 3일 전에 모여들어 온 집안이 가득했다.
밤이면 이방 저 방 가는 곳마다 가득 들어앉아 있는 사람들
돼지 한 마리는 기본이었고 두 마리에서 세 마리는 잡아야 했다.
이웃집 아주머니들은 들기름 바르는 무 꽁다리로 설설 솥뚜껑 엎어놓은 곳에
기름칠을 하고, 밀가루와 메일가루를 물에 풀어 파도 넣고 김치도 넣어 부치기를 구웠다.
한쪽에서는 찹쌀을 소죽 끓이는 가마솥에 쪄서 안반에 올려놓고,
힘센 어른들은 떡메를 치면서 막걸리 잔을 돌리며 노랫소리도 들렸었다.
이삼일 동안 이웃집 어른들이 준비해준 음식은 모두 과방으로 옮겨져,
손님이 오시면 오시는 숫자에 따라 금방 대접할 수 있도록 상차림이 준비되어,
둘이 들고, 넷이 들고 앞마당에 사랑방에 손님상을 차려 드렸었다.
품앗이 라고 해야 할까?
이웃집 혼사에 장사에 좋은 일 굳은 일 가리지 않고 찾아들던 이웃집들
언제부터인가 사람을 대신하여 잔정이라고는 느낄 수 없는,
다정한 말 한마디 들을 수 없는 봉투가 오고 가기 시작했다.
넉넉한 이들이야 형편껏 금액을 넣었겠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는 참으로 난감한 일이 되고 말았다.
하루 품이 3만5천원인데,
봉투 값도 인플레인지 5만원을 넣지 않으면 두고 두고 마음에 걸려
차라리 잊은 척 하는 것이 다.
몸으로 때우던 그 시절이 어쩌면 더 정겹고 사랑스러운 인의 풍경일진데
이제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여건도 사라져 버렸다.
이웃에게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면 모르겠지만
웬만하면 옛날 옛날의 어른들이 나누었던 이웃집 품앗이가 다시 회귀했으면 좋겠다.
사람,
사람의 일에
사람을 대신하건만
마주 잡을 손이 없고,
웃어주고 울어주며,
기뻐하고 슬퍼하지도 않아
사람,
사람을 빼앗아 가버린
그대 보이든가?
어서 오시게
봉투는 그만 두고
오래도록 여기 계셔야 하게
2010.12.19.19:52. 心鄕
'마음에 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월 주천, 작지만 따듯한 젊은이의 배려 (0) | 2011.01.05 |
---|---|
고생했소~어서 오시게~ (0) | 2010.12.31 |
관란정, 길을 걸으며 (0) | 2010.12.14 |
섶다리에 정은, 늙지도 않아 (0) | 2010.11.29 |
세계문화유산이 돼야 할 영월 주천강 쌍섶다리 (0) | 2010.1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