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날의 꿈
옛날 옛날에 꼬까옷에 검정고무신 신고 쥐불놀이를 하던 기억이 있다. 관솔을 깡통에 넣고 옆에서 뒤로, 앞에서 옆으로, 뒤에서 머리 위로 돌리면, 작은 불의 씨앗은 활활 타올라 둥글게 떠오르는 달을 맞이하게 된다.
마주보는 다래산에서 조금씩 얼굴을 보이기 시작하는 달빛은, 환하게 웃음짓던 외할머니 얼굴처럼 더욱 밝은 빛으로 세상을 향해 다가온다. 그러면 불놀이 깡통을 하늘 높이 던지게 되고, 쏟아져 내리는 불똥을 보면서 더욱 크게 보이는 달님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공손히 간절하게 새해 소망을 기원하기를 “하는 일 모두 잘되게 해 주옵소서” 라면서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바라고 원하는 소원을 다 말 할 때까지 절을 했었다.
지금은 흩어져 버린 추억이지만 내가 살던 마수고개에서는 동무들이 많았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고향, 고향을, 며칠만 기다리면 설날이 되고, 그 보름째 되는 날이면 움막처럼 쌓아둔 강냉이 섶에 불을 놓기도 했던 정월의 보름날이다.
타향에서 살고 있는 그들도 기억은 할 것이다.
고향 하늘에 둥글게 떠오를 보름달을 보고만 있을 그들을, 내가 살고 있는 주천으로 모시고 싶다.
한자리에 모여도 넉넉한 마을회관이 있고, 어른들이 정담을 나누는 경노회관도 있으니 잠자리는 넉넉할 것이고, 설에 준비했던 음식들도 널널하게 있을 것이니 먹을 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들에게 옛 추억을 되찾아줄 정월 대보름날, 밤이 새도록 따뜻한 아랫목에 둘러 않아, 살면서 살았던 이야기를 나눌 것이고, 겪어야 했던 아픔들 또한, 눈물범벅이 되더라도 두 볼에 흐르는 그대로 이야기를 이어갈 것이다.
살아가는 이야기를,
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옛 고향, 고향사람 일 것이다.
내가 발가벗고 다닐 때 볼 것은 다 보았을 동무와 선배, 어른들이었으니 더 이상 부끄러울 것도 없을 것이다. 그것만큼 더 편안한 만남도 없으리라. 고향을 떠난 이들과 하룻밤 함께 한다면, 아마도 그들은 잊지 못할 고향이 될 것이고, 그 하나 그리움에 없는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오고야 마는 고향방문이 될 것이다. 하늘과 바람과 사람의 정은 점점 짙어져 더욱 더 되돌아오고 싶고, 무언가 작은 일이라도 역할을 하려 할 것이다.
사람은,
사람의 관계는 언제든지 내 하는 만큼 되돌아오는 것이니 내와 그들이 서로를 공경하고 공감하며 편안하게 해줄 만남으로 이어갈 것이다. 마당이 있어야 자리에 참여할 수 있고, 참여가 있어야만 공감을 이뤄내게 되고, 고향을 위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어쩌다 만나면 고향을 찾아오지 않는 매정한 사람이라고 말을 한다.
찾아올 마당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반갑게 맞이해줄 사람과 사람의 정을 잊어버리게 한 것은, 세태가 만들어 버린 너와 나는 우리가 아닌, 나만의, 너만의 시대인지도 모른다.
세상살이에서 고향을 지키는 이와 타향에서 삶을 이어가는 이
모두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마당, 정월의 대보름날에 잔치를 연다면, 그들도 반갑게 올 수 있는 기회가 되고 명분이 되지는 않을까? 그리된다면, 고향이라는 땅은 사람의 이야기가 쌓이고 쌓여 마을의 전통이 되고, 세월이 흐르면 이 세상 그 어느 곳에도 없는 마을만의 역사가 될 것이다.
마을 발전의 바탕은 사람, 사람의 정이다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돌덩이 하나 그 어느 것 하나라도 흐트러짐 없이 자신들을 반겨줄 고향, 그 원동력은 추억을 바탕으로 한 사람, 사람의 정이라 할 수 있다. 현재를 살고 있는 이들과 출향인 이 곧 인적 자원이니 마을만의 전례전통을 기억하고 이어가는, 마을만의 문화가 오늘날 지금 이 자리에서 다가오는 정월 대보름 날 제현이 된다면, 영월 이라는 큰 고을의 역사를 이어가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오늘밤에도 달은 떠오를 것이다.
그들은 어느 하늘아래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들을 고향의 하늘아래 내가 살고 있는 마을에 초대하고 싶으니 그들도 고향으로 달려오고 싶은 마음이 있겠지. 내일 이라도 초대장을 보내고 싶다.
영월군내 각 마을마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마련한다면, 출향인들 에게는 어깨를 활짝 펴고 당당하게 방문할 수 있는, 체면을 살려주는, 진정 사람을 존중하는 정월 대보름날의 한마당 잔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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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일 : 2012.01.16 10:27 김원식기자 (dw-carpos@invil.org) / 기자주소 http://reporter.news.invil.org/dw-carp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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