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져가는 17인의 독립만세운동
오늘은 3월1일이었기에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선인들을 기억하게 합니다.
만세운동에 앞장선 인물은, 인척을 비롯하여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 온갖 고초를 겪게 했던 고난의 역사였습니다.
서울에서부터 시작된 독립만세운동은 전국의 국민에게 알려 자주독립을 위한 투쟁을 함께하기 위해 걷고 걸어서 영월 땅까지 전파되어, 주천면 금마리에 거주하는 어른들은 주천장날인 4월21일을 택일하여 주천장터에서 만세운동을 펼치기로 기획을 했었습니다.
이를 막아보고자 영월군수가 직접 마을을 방문하게 되었고, 철저하게 준비된 결행의 날이었기에 어른들은 군수가 타고 온 말에서 끌어내려 만세연명부에 서명을 하게하곤, 여러 날 밤을 새워 만든 태극기를 손에 쥐켜 그 자리에서 대한독립만세를 힘차게 부르게 했었습니다. 아마도 일본이 임명한 군수로서 독립만세를 부른 이는 전국에서도 이곳 영월군수가 유일한 인물일 것입니다. 만세를 외친 이후에 신체적 피해 없이 돌아간 군수는 헌병대를 투입하여 어른들을 구금하고 일본법정에서 재판을 받곤 감옥에서 온갖 고초를 겪어야만 했습니다.
역사의 독립운동사는 일본법정의 상세한 재판기록이 그대로 남아있어, 한편의 기록영화나 드라마로 촬영하여도 특별히 각색을 하거나 유추 해석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재판기록을 만나는 그 순간, 격동의 시간 속에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있는 듯 생생한 모습 그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옛 어른들의 독립운동 역사를 결코 잊지 말자는 기념행사가 올해도 변함없이 영월군 주관으로 주천면 금마리 만세운동 기념공원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전국이 다 똑같이 같은 시간대에 개최되는 기념식은 어쩌면 획일적인 행정부의 권한행사에 따른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국가적 독립만세운동일은 3월1일이니 3월1일에 기념행사를 개최하는 것이 타당하다 하더라도, 영월 주천의 금마리 독립만세운동일은 1919년 4월21일이었기에 영월에서는 4월21일을 잊어서는 아니 되는 날이 됩니다.
문제는 3월1일 날 기념식을 거행하다 보니 후손들은 4월21일을 잊어버리게 된다는 점입니다.
이 시점에서 다시 한 번 개념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기에 이 글을 씁니다.
3월1일은 국가적 대사이니만큼 정부가 기념식을 거행하고, 각 지방별로는 지방별 독립만세운동 시작의 날에 기념식을 봉행해야만 합니다. 나를 존재하게 했던 내 조상을 잊지 않기 위해 저승으로 가신 날짜에는 어김없이 제사를 올리듯 말입니다.
왜냐하면!
후손들은 중앙의 대표적인 인물 33인만 기억하게 되고, 개별 지역에서 일가의 목숨을 내어놓고 독립만세운동을 기획하고 실행했던 선인들은,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영월의 독립 운동사를 잊어서는 아니 되기에 4월21일 영월 역사의 현장에서 독립만세운동 기념식을 봉행하여야 합니다.
잊혀져가는 영월 독립만세운동의 주역 어른들!
기록을 보지 않고는 기억하지 못하는 영월만의 역사의 인물 17인!
고귀한 존함을 영원토록 기억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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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일 : 2012.03.05 09:11 김원식기자 (dw-carpos@invil.org) / 기자주소 http://reporter.news.invil.org/dw-carp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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