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기고문

2004년 정보화마을 동호회 장려상 수상기념 발표문

心 鄕 2004. 10. 22. 23:05

정보화 마을과 지적수준 향상

                                     고향인빌뉴스 스텝    김 은 선

  아주 옛날에는 5일마다 서는 장날이 모든 정보의 교환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한 집안의 어른으로서 막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장에 다녀오는

아버지로부터 세상 저편의 일들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월이 조금 더 지난 후에는 라디오와 텔레비전이라는 매체가 출현해 지구상의 모든 일들을

보고 들을 수 있었지만 이는 시간의 제약을 받는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문맹이란 말에 익숙해져 있던 어느 날 새로운 말이 생겨났습니다.

바로 컴맹이란 말입니다.

컴맹이란 이 말에 조금 나이가 든 도시의 회사원들이나 공무원들조차도

무력감을 느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도시사람들조차 쩔쩔매게 만들던 컴퓨터, 혹은 컴맹이란 말이

농촌이나 어촌 등의 시골마을에서는 얼마나 아득한 벽이었겠습니까?

이 아득한 벽을 넘어서고 깨뜨리는 일을 해낸 것이 바로 정보화 마을입니다.

   지금이야 대학이 누구나 당연히 가는 것으로 일반화되었지만

4,50대가 넘은 분들의 세대에서는 대학에 가는 것은

어지간한 부잣집 아들딸이 아니고서는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었기 때문에

학업에 대한 열망은 그저 가슴속에만 묻어두어야 했습니다.

정규학교 이외의 배움이라는 것은 새마을연수원에서 교양강의를 듣거나

농업기술센터에서 매년 정기적으로 시행하는 작물재베에 관한

강의를 듣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처음 컴퓨터란 아이들의 좀 더 발전한 오락기 정도로,

혹은 텔레비전의 조금 다른 모습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보화마을을 통해서 인터넷이라는 세계를 알지 못하면

이 시대와 동류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산골짜기의 작은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바다에 뛰어들게 된 것처럼 크고 엄청난 일이었으며 변화였습니다.

퍼즐을 맞추듯 자판을 두드리고 굳은 손가락으로 마우스를 움직이는 일이

그 누가 시켜서도 아니며 스스로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 때문입니다.

 정보의 바다는 무척이나 광범위하고 넓습니다.

그 넓은 바다에서 조금 더 효율적이고 또한 생산적인 정보의 교환이 이루어지게 한 것이

동호회입니다.

나와 같은 고민, 혹은 취미, 농삿일 등등의 이야기들을 서로 나눌 수 있는

또 하나의 장이 열린 것입니다.

5일마다 열리는 장이 아니라 일년 365일 24시간 언제 어디서나 열리는 장입니다.

 정보화 마을 동호회 고향인빌뉴스는 그러한 이유로 태어났습니다.

작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인터넷상에서 뉴스가 되었습니다.

바로 옆 동네에서는 감자를 캐고, 우리 마을에서는 옥수수가 익어가는 것을

인빌뉴스를 통해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인빌뉴스는 지난여름 참으로 장한 일을 해냈습니다.

그 시작은 맑은 물이 흐르던 주천강물이 피서가 절정에 이르렀던 시기에

흙탕물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민박집을 비롯해 피서철을 성수기로 생활하는 주민들은

환불을 요구하는 등의 손님들에게서 시달림을 받아야 했고

면사무소나 군청에 문의를 했지만 속 시원한 대답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인빌뉴스는 바로 현장취재에 나섰습니다.

강물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서 흙탕물의 근원지를 찾아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골프장때문이었습니다.

한 대기업이 공사 중인 골프장 현장에서 흙탕물은 시작된 것입니다.

이 일은 바로 인빌뉴스로 출판되었고 주민들은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대대로 뿌리내리고 살아온 마을의 젖줄인 강물이 이 지경에 이르도록

면이나 군의 어떤 공무원도 움직여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주민들은 인빌뉴스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때로는 생업조차도 미루어두고 마을의 현안에 골몰할 수 있었던 것은

가상의 공간속에 만들어진 끈끈한 가족애 때문이었습니다.

몇 달째 끌어 온 이 골프장 문제는 아직 해결이 되지 않고 있으나

방향을 잡아가고 있습니다. 인빌뉴스가 아니었다면

과연 그 대기업에 항의 한번 해 볼 수 있었을까요?

 아직은 정보화마을이, 또 동호회가

처음 의도만큼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지는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전국에서 최초로 정보화마을에 선정된 지역에 살았던 경험이 있습니다.

지원되는 컴퓨터에만 연연해 제대로 한번 켜보지도 못하고

매달 지출되는 통신료가 아까워 컴퓨터를 반납하는 사례들도 많이 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의문이 드는 것은

과연 정보화마을이란 행정자치부에서 지원한 컴퓨터를 받은 사람들만이

구성원이 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자비로 컴퓨터를 구입해 사용하더라도 그 마을에 거주하는 주민이면

누구나 구성원이 될 수 있어야 폭이 넓어지는 것은 아닐까요?

 또한 컴퓨터를 사용하고 싶어도 월 3만원대의 통신료조차도 부담이 되는 가정도 있습니다.

이는 현재 농촌마을의 현실입니다.

기왕에 농촌지역주민의 정보화와 복지차원에서 시작을 했다면

통신료의 일정부분 지원이 더욱 빠른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봅니다.

양적인 팽창보다는 이제는 질로 승부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동호회는 정보화마을에서 아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동호회의 활발한 움직임들이 모여 정보화마을을 이끌어 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나와 같은 연결고리가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이루기 위해 각자가 필요한 시간에

동호회의 문을 엽니다.

그리고 또한 정보화마을의 문도 엽니다.

누구도 동호회와 정보화마을을 떼어놓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보화마을이 넓은 바다라면은 동호회는 그 바다를 이루는 강들이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강은 바다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닿겠고

또한 푸른 빛의 바다를 늘 존재하게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기회를 마련해주신 정보화마을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2004년 10월 20일

2004년 동호회 장려상 수상기념 발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