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창

'누가 내 이름을 묻는다면', 이진영 선생님 수필집 『나도 춤추고 싶다』

心 鄕 2009. 10. 4. 15:10

이진영 선생님 수필집 『나도 춤추고 싶다』

3. 누가 내 이름을 묻는다면


바람의 빛깔

 

봄바람
봄은 바람에 실려 옵니다.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계절을 싣고 다려오는 바람은 그 무게로 인해 거세지나 봅니다. 그러나 물러서기를 주저하는 겨울을 내몰기 위해, 날을 세운 날카로움 속에서도 미소를 흘립니다.  분명 선명한 봄빛을 안고 있습니다.


거친 호흡을 가다듬기도 전에 다시 서둘러가는 바람이 던진 봄이, 햇살 한 자락 걸친 바지랑대 위 갓 헹구어 널어놓은 빨래에서 눈부시게 펄럭입니다.

 

부채바람
바람이 한숨 잠자던 여름날, 어린 내가 잠들어 있는 머리맡에서 어머니는 부채질을 하셨습니다. 송골송골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거두어 주기 위해서 어머니의 바람을 일으키는 손놀림은 조심스러웠습니다. 행여 바람이 세어서 감기라도 들세라, 행여 흘린 땀으로 땀띠라도 돋을세라, 잠들어 있는 동안 나는 내내 푸른 나무 그늘 아래 잔잔한 바람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 어머니의 손놀림은 살아가면서 늘 나의 가슴속에, 더러는 뜨거운 분노와 더러는 고달픔으로 인한 견딜 수 없는 열기를 식혀주는 서늘한 바람을 주었습니다. 그 바람의 빛깔은 따스한 사랑입니다. 깊은 그리움입니다.

 

돌풍
오래 전, 뜰이 넓은 집에서 살 때였습니다. 투두 투두 거센 빗줄기와 함께 돌풍이 불었습니다.
“우르르릉 콰쾅 쿵! 째앵!”
깊은 잠에서 미처 깨어나지 못한 채 그저 세상이 무너져버리는 듯한, 어떤 의성어로도 적절하게 다 표현할 길이 없는 굉음만 들릴 뿐이었습니다. 나는 시간이 얼마큼 지난 후까지 좀처럼 이불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이제 마지막이구나’ 하면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습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아버지가 밖으로 나가셔서 대문 앞 소나무가 뿌리째 뽑혀 쓰러진 것을 발견하고 소리를 지르셨습니다. 창고 슬레이트 지붕은 모두 날아갔으며, 대청 유리창이 몽땅 깨져 파편들이 우수수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린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막 제법 맛이 들기 시작하던 배며 복숭아는 무참하게 떨어져 땅에 처절히 뒹굴었습니다. 뜰은 폭격을 맞은 전쟁터 같았습니다. 흡사 완성되지 못한 그림에 쏟아 부은 먹물처럼, ‘바람은 오랜 세월 공들여 그린 모든 형태를 파괴시킬 수 있는 잔인한 빛이구나.’

 

무풍지대
일직이 무서운 바람을 경험했던 탓인가요. 한세상 살아가면서 거센 바람이 불지 않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휘익 날아 가버릴 소유에 대한 두려움이었지요. 나를 날려 보내고 내 주위를 날려버릴 수 있는 바람을 피하고 싶었습니다. 바람의 흔들림 앞에 당당히 맞서기에는 너무 유약했던 듯싶습니다.


잔잔함 속에 평온함. 그러나 너무 고요했습니다. 무풍지대, 바람과 파도가 전혀 없는 지역. 바다는 잔잔히 깊은 수면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공기조차 멈추어 사물들은 모두 굳어버리려 했습니다. 사방은 무섭도록 적막했습니다. 그럴 때가 가장 두려웠습니다. 영영 그곳에 갇혀 숨이 막혀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지요. 자신의 색을 지니지 못한, 무풍지대는 무력함이며 퇴보였습니다.
특히 예술가에게는 치명적인 독이라 합니다. 나는 다시 변화의 바람을 간절히 원하게 됐습니다.


풍차
어느 봄날, 문우들과 강원도 여행 중 대관령 삼양목장에 올라갔습니다. 산마루를 향해 오르는데, 수십 개 아니 더 많은 풍차들이 쉭-쉭 거센 바람을 안고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바람이 거세 풍차가 돌아가는지 풍차가 돌아가서 바람이 거센지, 산은 온통 바람으로 채워져 흡사 모든 걸 날려 보낼 기세였습니다. 이제 막 솟아나온 연린 잎을 안고 있는 나무들은 거친 바람에 맞서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춤이라기에는 몸부림처럼 보였습니다. 어느 제의식에 신의 대리자가 되어 경건한 춤을 추는 듯이 비장해보이기조차 했습니다.


그러나 바람이라 하여 다 풍차를 돌릴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합니다. 너무 강해도 너무 약해도 안 되고, 멈췄다 불었다 해도 안 된답니다. 또 태풍이 불면 멈출 수밖에 없답니다. 지나치게 억제되거나 과도하게 작동해서도 안 되는, 바람의 강약, 완급조정이 원활하게 풍차를 돌릴 수 있음을 대관령 산마루에 올라서야 비로소 알았습니다.

 

바람
바람은 살아 있습니다. 살아 있기에 움직임이 있고 움직이기에 변화합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느낌은 있습니다. 때론 강하면서, 때론 부드럽죠. 스스로 무섭게 분노하지만 스스로 유연하게 자신을 잠재울 줄도 압니다. 도도하고 강한 자를 흔들어 낮추기도 하고 비상할 수 없는 낮은 곳에 있는 물체들을 하늘 높이 들어 올려 잠시의 황홀한 비행에 들뜨게도 할 수 있습니다. 소리치고 싶을 때 주저 없이 소리치며 울고 싶을 때 큰소리 내어 울기도 하는, 통증을 참지 못해 우~우 신음소리를 내며 달려가는 바람은 오히려 그 자유로움으로 인해 행복할지도 모릅니다.


바람은 좀처럼 아프다 내색 않는 바다를 펄펄 뛰며 통곡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과묵한 나무들도 격렬하게 춤추게 만들기도 하는 바람의 힘은 놀랍습니다. 체념과 포기를 안고 숨죽인 불씨들을 다시 활활 타오르게 하는 바람은 주술적인 마력을 지닌 듯도 싶습니다. 하지만 바람도 저항할 대상을 찾지 못하면 흔적을 남기지 못한답니다. 바람 앞에 자신을 숨기지 않았던 형체들이 있었기에 바람의 존재가 더욱 두드러졌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바람을 안고 힘겹게 올라선 세월의 고갯마루를 내려서면서 어렴풋이 깨닫습니다. 더러는 살아오면서 꼿꼿하게 서서 담대하게 이겨내지 못하고 휘청거리며 주저앉게 만들었던 건 바람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나를 믿지 못하는 또 다른 나였을 뿐.
오히려 강함과 약함, 없음과 있음, 그리고 따스함과 차가움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바람의 빛깔이 내 삶의 풍차를 쉬지 않고 돌리고 있습니다.


오늘도 바람이 붑니다. 시간의 풍차를, 후회와 깨달음의 풍차를, 사랑과 그리움, 그리고 화해와 용서의 풍차를 돌립니다. 크게 들이쉼과 깊게 내쉼의 숨소리처럼 ‘웅-웅’ 소리를 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