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창

'누가 내 이름을 묻는다면', 이진영 선생님 수필집 『나도 춤추고 싶다』

心 鄕 2009. 10. 16. 21:33

누가 내 이름을 묻는다면 / 이진영 선생님 수필집 『나도 춤추고 싶다』

 

반듯한 밥상 위에서 결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따끈한 김을 모락모락 뿜어 올리며 세인의 사랑을 듬뿍 받았습니다. 제사상에도 제수로 진설되었으니 나의 품위는 가히 짐작이 될 겁니다.

그러나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꽃의 영화도 잠시, 청춘이라는 이름이 섬광처럼 빠르게 머물다 가버리는 것처럼, 갓 지은 더운밥에서 찬밥으로 다시 쉰밥으로 전락하는 것도 순간입니다. 난 소외당한 서러움을 견딜 수가 없어서 처절한 눈물만 흩뿌려야했습니다.

 

오래전입니다. 어느 새댁, 새척지근한 나를 손에 잡고 코를 가까이 대고 킁킁 거려보더니 이내 낭패스러운 얼굴이 됩니다. 날쌍날쌍한 소쿠리에 담아 서늘하고 바람 잘 통하는 뒤꼍에 매달아 두었지만 푹푹 찌는 무더위에 잠록하기 까지 했으니 한나절도 못가서 맛이 변하는 건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러나 난 내 탓인 양 고개를 못 들었습니다.
“아까워 어쩌지!”
결국은 나를 찬물에 헹구기 시작했습니다. 냄새나고 상한 부분을 그렇게 씻어버려야 하듯이, 바락바락 헹구는 손에 힘이 들어갑니다. 깨끗이 헹군다고 변해버린 마음이 다시 돌아올 수 있다면 그렇게 석 달 열흘이라도 내 몸 바스라 지듯이 부대껴 보겠습니다. 그러나 한 번 변해버린 마음, 되돌아오기가 어디 그렇게 쉬운가요.

 

밥알 한 톨도 귀하게 여길 때이니 아무리 맛이 변했다 해도 쉰밥, 나를 그대로 버린다는 건 상상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더구나 엄한 시어머니 계시니 함부로 버렸다가는 음식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하여 시집에서 내쫓겨 날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다시 킁킁 냄새를 맡고 고개를 몇 번씩이나 갸우뚱 해보더니 물에 말아 오이지 쭉쭉 찢어서 고추장 푹 찍어 후딱 먹어버립니다.
글쎄요. 그 후 배탈이 나서 뒷간을 들락거리면서 고생을 했다는데, 그대로 버릴 걸 그랬다고 후회를 많이 했답니다. 나 역시 송구스럽고 죄송했지만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 아닙니까.

 

어느 할머니 이야기도 해야겠습니다. 그래도 내가 쓸모가 있다고 바글바글 끓여 풀주머니에 넣고 베 고쟁이와 함께 주물 거리셨습니다. 하지만 끓인다한들 내가 이미 끌어안고 있는 그 특유의 시큼한 냄새야 어디 가겠습니까. 그러나 개의치 않으시고 꼿꼿하게 풀 먹여 고쟁이와 적삼을, 숯불 얹은 다리미로 슬슬 다림질하여 입으시고 만족한 웃음을 지으셨죠. 그 할머니에게서는 언제나 쉰 냄새가 났습니다. 아이들은 그 냄새가 할머니 냄새라고 고개를 돌렸지만 사실 난 알고 있었어요. 내 특유의 향기라는 걸. 그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도 여러 해 됩니다. 그래도 그때는 좋았습니다. 고개를 바짝 쳐들고 꼿꼿한 자태를 뽐내며 사방을 두리번거릴 수 있었으니까요.
 
오늘, 난 버림을 당했습니다. 마음 변한 냉정한 애인처럼 그렇게 머뭇거릴 시간도 없이 밀쳐내다니, 아까워하는 기색도 없이, 이제는 힘을 영 못 쓰는 늙은 머슴 내치듯이 그렇게 내쫓겼습니다.

외출에서 돌아오신 후 밥솥을 열어본 이 댁 마님, “아차! 쉬었구나.” 어제 저녁 그만 남겨놓은 나를 냉장고에 넣지 못한 실수를 탓하면서도 크게 낭패스러워 하지는 않더라고요. 이내 냉동실에서 냉동된 밥을 꺼내 레인지에 데워 밥상을 차렸습니다. 푹 쉰 것도 아니고 아주 약간 쉬었을 뿐인데....

마지막 기대를 해 봅니다. 행여 식탁보나 무명 옷감을 위해서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까 하여 목을 길게 뽑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 나의 어리석은 착각이었을 뿐입니다. 구김이 가지 않는 혼방 섬유의 등장으로 무명천에 풀 먹여 다림질하여 입는 사람들이 귀한 세상이랍니다. 설혹 있다하여도 편리하게 세탁소로 보내거나 시판되는 향기가 나는 풀을 스프레이로 뿜어가면서 다림질한다니, ‘휴, 나는 이제 갈 곳이 없구나.’

 

요즘, 나이 탓이라고 사회에서도 가정에서도 뒷전이 되어버린 이들에게 속된 말로 쉰세대라고 한답니다. 맛이 변해서 쓸모없이 되어버렸다는 뜻이겠죠. 이미 오래전 쉰세대가 되어버리셨는지, 우두커니 뒷짐 지고 이곳저곳 기웃거려보시다가 먼 산 바라다보면서 애꿋은 담배만 뻐끔뻐끔 피시던 할아버지처럼, 툇마루 끝에 앙상한 어깨로 오도카니 앉으셔 대문만 뚫어지게 바라다보시던 할머니처럼, 나 또한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자욱하게 한숨만 토해냈습니다.

얼마 후면 난 정말 어쩔 수 없이 어둡고 축축한 쓰레기통으로 던져질 겁니다. 아무리 과거의 영광을 들먹여도 어쩔 수 없이 외면과 멸시 속에서 생을 마칠 거라는 불길한 예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내가 머문 곳은 어디인가요? 무섭고 두려운 나머지 어디론가 던져지는 순간 정신을 잃었던 싶습니다.
“이젠 정말 끝이구나.”
그런데 뭔가 분위기가 다릅니다. 난 정신을 차리고 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부드러운 톱밥과 낙엽이 섞인 흙으로 채워진 통 안입니다. 꿈인지 생시인니 난 다른 음식물쓰레기와 흙과 뒤섞여 얼마큼의 열기를 벗 삼아 발효되고 있었습니다. 놀라웠습니다. 사방은 숨 막힐 듯이 꼭꼭 막힌 공간이었지만 손바닥만 한 희망이 한줄기 빛처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난 결코 포기하지 않을 거야.’

 

비료라는 이름으로 변신한 나는 얼마 후면 고운 빛깔 꽃으로 태어날 겁니다. 꽃밭에 뿌려져 꽃씨를 끌어안고 그와 하나 되었으니, 실팍한 싹을 틔우고 푸른 줄기를 뻗어 눈부신 꽃이 되어 피어날 겁니다. 그러나 가만히 향기를 맡아 보십시오. 분명 나의 향기가 깊숙이 배어 있을 겁니다. 돌아가신 옛 분들이 스스로 비료가 되어 희생과 사랑으로 만들어 놓은 세상 꽃밭에서 아이들이 푸른 나무가 되어 옹골지게 자라나는 것처럼. 그리고 싱싱한 줄기 끝 막 피어난 한 송이 꽃에 그분들의 내음이 짙게 배어있는 것처럼.

 

나는 오래 전 어느 새댁이 아까워 함부로 버리지 못했던 쉰밥이었습니다. 어느 할머니의 고쟁이며 적삼에 꼿꼿한 풀기를 더해주던 쉰밥이었습니다. 어느 날부터는 쓸모없는 존재로 절망과 체념의 한숨만 푹푹 쉬던 쉰밥이었습니다. 그러나 알뜰하고 지혜로운 마님은 나에게 최선의 길을 택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나를 버리고 변화시켜 또 다른 한 생명을 품었습니다.

누가 오늘 내 이름을 묻는다면, 향기로운 꽃이라 넌지시 일러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