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나 술래
[“희망을 찾기 위해서도 달려보는 거야. 실패와 좌절의 경험을 터득한 노련한 술래가 아닌가.”
이진영 선생님 수필집 『나도 춤추고 싶다』3. 누가 내 이름을 묻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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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친구들과 가장 즐겨했던 놀이가 숨바꼭질이었다.
한 아이가 술래가 되어 숫자 제한이 없이 친구들과 숨고 찾고 하면서 놀이를 했다.
우리 집은 숨을 곳이 아주 많았다. 뒤뜰에는 층층의 대소쿠리며 젓갈 항아리들이 나란히 놓여 있는 깊숙한 광이 있었고, 2층 올라가는 계단 밑에도 아버지의 연장이며 철지난 돗자리나 허섭스레기를 넣어두는 크고 작은 상자들이 가득한 광이 있었다. 내 팔로 안기도 벅찬 은행나무 뒤쪽도 은밀했고, 건넛방에는 내가 숨어들어가기 좋아하는 높직한 다락이 있었다. 장독대에는 우리의 몸을 감춰줄 큰 독들이 즐비했다.
나는 술래가 되어 담벼락에 기대어 두 눈을 가리고 “하나 둘...” 천천히 열을 센다. 조금 약은 아이라면 열을 세기 전에 살짝 눈을 떠 본다던가, 아주 빨리 열을 세기라도 했겠지만, 우직하게도 아주 천천히 수를 세어 아이들이 충분히 숨을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떴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아이들은 없다. 세상에 나 혼자 남은 듯했다. 그 순간 갑자기 밀려오는 외로움은 걷잡을 수 없이 날 허전하게 만들었다. 뒤돌아보면 언제나 하나 뿐인 그림자가 내 곁에 나처럼 외롭게 기대서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난 술래다. 이리저리 아이들을 찾는다. 언제나 같은 장소에 숨는 아이가 있지만, 난 또 언제나 ‘이번은 다른 곳에 숨어 있을 거야’라고, 제법 똑똑한 생각을 해보는 똑똑하지 못한 아이였다. 어렵사리 아이들을 찾으면 이내 달려와서 술래집을 쳐야 했겠지만, 보기보다 둔한 내가 달려오는 동안 친구는 나를 앞지른다. 그 아이가 나를 밀치느라 넘어질까 봐 길을 비켜주는 아이였다. 어쩌다 술래에서 벗어나서 나도 다른 아이들 따라 숨어보는 행운을 누리게 되어도 늘 같은 곳에만 숨는 아이였다.
낮선 곳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술래가 나를 영영 못 찾을 것에 대한 염려스러움이었다.
그 시절 난 언제나 그렇게 술래였다. ‘숨바꼭질’에서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도, 고무줄넘기에서는 금세 줄을 밟거나 높이 넘지 못했기 때문에 언제나 줄을 잡는 아이였다. 그러나 술래라는 그 하나뿐인 역할이 왠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인가 한세상 살아오면서 언제나 아이 때처럼 술래가 되어 꼭꼭 숨어버린 대상들을 찾아내야만 했던 듯싶다. 숨바꼭질은 숨어 있다가 나타나는 쾌감, 존재의 연속을 부재로 단절시키는 데 있다고 한다. 우리가 원하는 기회나 행복도 숨바꼭질처럼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어느 곳에 숨어 있다가 잠깐씩만 얼굴을 내민다. 영리한 술래라면 발 빠르게 적절한 기회도, 귀한 인연도, 출세도, 이재(理財)도 쉽사리 찾아내어 기쁨과 영광을 누리겠지만, 잠시 다가와 손을 내미는가 싶으면 다시 어느 결에 숨어버리는 내 몫의 기회도, 사실은 늘 같은 자리에만 숨는 듯한 행운조차도 찾아내지 못하고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혼자 남은 외로움에 허전해하면서 힘없이 소리치고 있었다.
“못 찾겠다. 꾀꼬리!”
그러나 포기와 절망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나에게, 결코 짧지 않게 살아온 세월이 다가와 속삭이며 마음을 추슬러준다.
“넌 찾을 수 있어, 다시 한 번 용기를 내 보는 거야.”
그래, 저만치 숨겨진 이들의 옷자락이 희끗거리는 듯도 한데, 서둘러 달려가 보자. 미처 다다르기도 전에 순식간에 날개라도 달린 듯이 나를 앞지르는 기회를 쫓아 숨이 차도록 달려보자. 오늘의 현실이 어둡고 암담하여 어느 곳에 숨어 있는지조차 영 알 수 없는 희망을 찾기 위해서도 달려보는 거야. 난 이래봬도 실패와 좌절의 경험을 터득한, 이제는 수십 년의 경력을 가진 노련한 술래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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