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영월의 노루조각공원에 조성된 노루가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보는 이로 하여금 넉넉하고 여유로운 노루가족을 만나 활짝 웃으면서 더불어 행복을 느끼게 하는 조각공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글을 씁니다. 또한 차후에는 충분한 여유 속에서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고 모두에게 사랑받는 시설물이 되도록 정보의 공유와 참여의 마당이 마련되기를 희망합니다. 그럼, “희망영월, 노루에게 생명을!”에 대한 본론을 펼치고자 합니다.
영월에서의 노루는 554년 전인 1457년 음력 10월의 하순에 폭설내린 산중에서 맺은 인연으로 인하여 오늘날 영월의 상징물로 존중받고 있습니다. 단종대왕을 이곳 영월의 장릉에 모실 수 있도록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비켜준 노루가족이기 때문입니다.
세종대왕의 여섯 번째 아들인 금성대군이 지금의 영주 땅인 순흥에 유배되어 영주부사 이보흠과 단종복위를 도모하기 위해 만인에게 배포할 격문을 만들어 자신의 침소 문갑에 보관했었습니다. 금성대군에게는 몸종인 금연이 있었으니, 이보흠의 시종을 사랑하게 되어 깊은 관계를 맺게 되었으며,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는 시종의 말에 격문을 넘겨주게 되며, 이로써 단종복위 전모가 드러나 금성대군 자신뿐 아니라 조카인 단종까지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1457년 음력10월24일 영월의 관풍헌에서 세조의 사약으로 승하한 단종은 어느 누구라도 시신을 수습하는 자는 3족을 멸하겠다는 어명에 따라 동강에 버려졌습니다. 영월의 호장이던 엄흥도는 아무도 모르게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여 지게에 지고 모실 곳을 찾아 이동하게 됩니다. 때는 음력 10월의 그믐이라 폭설내린 산길을 오르는데 잠시 쉬어 갈 곳을 찾던 중에, 한 곳에 모여 있던 노루가족이 비켜주어 온기가 남아 있는 따듯한 자리에 모실 수 있었습니다. 즉, 단종을 모신 장릉은 노루가족의 보금자리이었으니, 단종대왕과 노루가족, 조선의 국왕을 모실 수 있게 된 근원이 되었으니 영월로서는 너무도 소중한 노루가족입니다.
조선의 역사 속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단종과 영월 그리고 노루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오늘날 ‘지붕 없는 박물관’, 역사와 전통을 이어받아 ‘명품도시 영월’을 주제로, 장릉 주변 연못을 노루조각공원으로 단장 하고, 노루가족과의 인연을 잊지 않으려고 각종 조형물을 설치하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 중에서 노루에게 편안한 안식처를 제공하고 보는 이로 하여금 희망찬 생명을 느낄 수 있는 조형물이 되어야 한다는 중론이 일고 있습니다.
장릉으로 오르는 도로변의 노루가족은, 그늘 없는 뙤약볕아래 풀 한포기 자랄 수 없고 물 한 모금 먹을 수 없는 타일바닥에서 애타게 먹을 것을 찾는 모습으로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형물이 사람이라면 사람의 입장에서, 노루라면 노루의 입장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됩니다. 그리 어렵지 않게 개선 할 여지가 남아있으니 장릉 연못에 조성된 노루가족처럼 맑은 물과 풍성한 풀을 먹고 있는 노루가족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출판일 : 2011.04.19 10:41 인빌뉴스홈 > 인빌소식 > 강원 영월 술빛고을 | 기행/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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