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창

나도 신선이 되는 영월[희망영월 9월호]/ 김원식(문화관광`지질공원`자연환경해설사)

心 鄕 2015. 10. 2. 11:35

나도 신선이 되는 영월

                       김원식(문화관광`지질공원`자연환경해설사)


내가 살고 있는 곳을 떠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오래전부터 몸으로 익힌 일상들 자체가 문화이고, 세월이 흘러 50년이 지나면 역사가 된다고 봅니다. 떠나는 그 순간까지도 마을의 정서와 관습을 알고 있고 마을만의 자율이 습관화되어 자신도 모르게 지켜지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지킴이입니다.


함께 살면서 늘 같이 있었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들이 있었습니다.

잠재되어있던 그 무엇을 콕! 끄집어내서 한편의 기록으로 남긴다면, 사람 사는 세상과 함께 공존하는 문화와 역사는 아닐까? 하여 글을 쓰게 됩니다. 기댈 수 있는 언덕, 옛날 옛날에 먼저 사셨던 어른들이 계셨고 남겨두신 이야기가 있었으니까요.

시작은 영월의 사신선(四神仙)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첫 번째 신선(神仙一)은,
 뵙고 싶은 분을 얼마나 기다렸던지

길고 긴 기다림의 만남을 준비하다보니 자신을 가다듬게 되어 우뚝 솟아있는 신선바위 선돌입니다.
국가지정 명승76호이자 국가지질공원의 명소인데요,

서강 물 굽이돌아 이른 아침 물안개는 꽃으로 피어나고,

엄지같이 서있는 바위를 감싸는 안개꽃은 ‘조금 더 기다림을 준비하면 만날 수 있다’고 다독여줍니다.


옛 길 흐르는 물결 따라 하늘을 쳐다보면,

병풍처럼 펼쳐있는 벼랑위에 하얀 띠를 두른 물안개는 꽃구름 무지개다리인 듯하여

1820년대 영월부사 ‘홍이간(洪履簡)’은 길을 지나는 누구에게든 시(詩)한 수 지을 수 있도록

키 높이 벼랑위에 붉은 색을 입힌 ‘운장벽(雲莊壁)’ 시제(詩題)를 새겨 놓았습니다.


지금은 시절길이 만들어져

다가오고 지나가는 바람과 햇살 그리고 물빛고운 서강 물이 다듬은 ‘신선바위’를 만나기 위해 많은 분이 찾아오십니다.
발 디뎌 내려다 본 풍경은 두 팔 활짝 펴고 훨훨 하늘을 날고만 싶고,

왼 손 길게 펴고 엄지손가락 요리저리 눈 맞춤하면 자신도 모르게 세상살이 까마득하게 잊어버리는 ‘운장벽(雲莊擘)’되어

 ‘나도 신선’이 됨을 느끼게 됩니다.


두 번째 신선(神仙二)은, 요선암(邀仙岩)입니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세월동안 흐르기 시작한 주천강(酒泉江)은

상류에 있는 모래와 자갈을 데리고 내려오면서 강을 가로질러 버티고 있는 암반을 다듬기 시작하여

기기묘묘한 형상을 만들어 놓았으니 그 모양을 바라보는 이마다 한마디씩 하기를,

‘달빛고운 보름날 밤에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했다’면서 ‘선녀탕’ 이라하였고,

작은 돌이 물살의 힘을 빌려 빙빙 돌면서 암반을 다듬으니 그 깊이는 더욱 깊어져 ‘단지바위’ 라 하였고,

엷은 깊이로 오목한 부분은 ‘사발’ 같다하고,

물도랑을 파 놓은 듯 구불구불 바위도랑 형상도 있으니 이 모두를 ‘돌개구멍’ 이라 합니다.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닌 자연이라는 신선이 만들었기에

바라보는 이마다 ‘무릉도원(武陵桃源)’에 들어선 듯 등에 걸머진 세상사 보따리를 모두 내려놓게 됩니다.


주천강(酒泉江)과 법흥천(法興川)이 서로 만나는 곳에서 위를 쳐다보면,

집채만 하게 ‘방상절리(方狀節理)’되어 두부모처럼 생긴 큰 바위가 층층이 쌓여있고,

맨 위에 있는 바위는 산으로 오르는 물안개와 바람의 빛과 세월이 어루만진 둥글 바위 ‘토르’가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틈새에 뿌리내린 천년 노송이 지켜주고 있었으니

자연과 지질의 역사를 가늠하게 하는 경이로움에 저절로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 명소가 되고 있습니다.


더하여, 둥글 바위 토르에는 어느 시절에 모셔진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마애여래석불좌상’이라고 일컫는 신선이 새겨져 있었으니

 이 모두를 아울러 말하기를 신선을 맞이하는 바위, ‘요선암(邀仙岩)’이라 합니다.


세 번째 신선(神仙三)은, 선암마을과 한반도지형입니다.
한반도지형은 신선이 계시는 바위라 하여 마을주민 모두가 곁에서 모셨기에 ‘선암마을’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시선에서 바라본 한반도지형은 주천강과 평창강이 곁을 지키고 있고,

물길 닿는 넓은 땅은 ‘한반도습지’는 국제협약인 ‘람사르습지’에 등재되어 자연생태계의 보물로 세계적인 관심을 갖게 되었고,

한반도지형은 우리나라 땅 덩어리 모양 그대로 닮았기에 동해에서 서해까지 단 1시간 만에 전국을 유람하는 뗏목을 타면서

동해의 가파름은 왜 생겼는지?, 서해의 부드러움은 어디에서 오는지를 가늠하게 됩니다.


무더운 여름날 흐르는 물살에 몸을 맡긴 뗏목이 동해에서 남해를 지나 서해로 가는 동안 두발 담그고 있으면

어느 샌가 다가와 발가락을 간질이는 물고기들을 만나게 됩니다.


때로는 솟대위에 하늘새 물오리를 떼로 만나게 되니

앞서는 어미 따라 뒤를 따르는 12마리 ‘애기비오리’의 힘찬 물 걸음을 바라보노라면,

‘살아가는 것은 다 같은 몸짓’이라고 혼잣말을 하면서 빙그레 미소 짓게 됩니다.


네 번째 신선(神仙四)은,
터를 잡고 뼈를 묻은 선대 어른의 뒤를 이어 현재를 지켜내고 있는 마을의 주민 분들입니다.


수없이 많은 분들에게 자연과 사람의 조화로움을 가슴 가득 감동을 안겨드리는 주민이니까요.

손님은 기다림을 따라 떠나야 하지만 주민은 손님이 남긴 발자국 따라 되돌아보게 됩니다.
무엇이 부족했을까, 불편하지 않았을까, 언제쯤 또 오시게 될까?


만남을 위한 기다림의 준비는 이어질 것입니다.

신선은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지키고 다듬어야만 더 아름다운 신선을 만날 수 있으니까요.


영월에는 이렇게 영월만의 신선문화가 있습니다.
길고 긴 기다림을 준비하여 신선이 된 선돌,

신선이 계시기에 대를 이어 지켜낸 한반도지형의 선암마을,

둥글 바위에 불상이 되어 신선을 기다리고 맞이하는 요선암이 있으니까요.


공통점은, 영월에 오시면 신선을 만날 수 있습니다.

신선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여러분이고~! 여러분을 맞이하는 영월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