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전에 어떤 부대사병이 사단장인가 하는 부대장의 공관에서 있었던 일을 기록으로 나겨 그것이 큰 사회적인 이슈가 되었던 적이 있다.
부대장과 그의부인의 언행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아들둔 부모들 군대가서 남에 딱거리노릇이나 하는걸 보곤 군대 안보내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군대의 고급장교 관사에서 있었던 여러가지 바람직하지 못한 일들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단지 활자화 되어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인터넷이라는 이 좋은 세상에 살고 있으니 모두가 알게되고 그것에 대한 의견을 표출하고 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어던 집단사회의 단면이라고 말해야 할까
특히나 군대에서는 상관의 말은 곧 명령이고 좀 부당한 상관의 지시나 언어표현에는 감히 이의를 제기 하거나 항의를 할 수 있는 구조적이 여건이 안되어 있다
단지 언제나 그 상관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만 하는것이 사병이었던 아와 모두의 할 일이었다
그래야만 편안한 휴일과 일과시간 이후가 될 터이었으니...
여러가지 계급을 떠난 인간적인 정들이 없는것은 아니다
웃옷만벗으면 계급장이 없으니 흉허물없는 사이가 될수도 있다
때문에 상관들은 가끔씩 사병들의 마을을 달래주기위해 모두가 함께 외출하여 저녁을 먹고 술집에 들려 맥주도 먹고 했었다.
당시에 사병의 월금이 1,500원인지 3천원인지 잘 기억이 안나지만 모든 비용은 그 상관들이 냈었다.
대체적으로 훌륭한 인격을 갖추고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처음 군입대했을때 논산 수용연대에서 신체검사를 마치고 연무대 23연대에서 훈련을 받았었다.
조교들과 중대장은 논산훈련소가 생긴 역사이래 처음으로 서울지역 사병이 논산훈련소에 입대를 했다고 하면서 많은 신경을 써 주었었다.
야간 훈련때는 고향의 봄 노래를 함께 부르고 사격장에서 점수가 적게나오면 조교도 같이 토끼뜀 뛰곤 ..했다.
훈련을 마치고 야밤에 열차를 탈땐 이별의 아쉬움에 손을 흔들고
그때 당시에는 군대에서의 구타가 마지막으로 사라지는 과정이었다
자대배치받아서는 고참들 밥그릇 세척을 했지만 제대할때는 개구리복 입고도 내가 먹은 밥그릇은 내가 세척을 했었다.
지난 1978년 5월의 일이다.
공관 하면 대체적으로 사단장의 숙소,관사를 말하는데 이곳에는 여러명의 사병이 같이 거주하고 있다.
그야말로 군대식으로 이야기하면 딱꺼리고 좋은 표현을 빌리면 공관병이다.
하는 일이야 완전 옛날 식모들이 했던 가정사들을 도맏아 하는 일들이다.
거기에 부인과 이이들까지 같이 있으니 어런저런 불미스런 일들이 안벌어 질래야 안벌어 질수가 없다
이제는 이쯤에서 군대의 공관병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
엄밀하게 공관을 경비하는 경비병을 제외하곤 울타리 내에 가정사는 사단장 스스로가 해결하는 방법으로 가야한다고 본다
가정내부의 온갖일들을 사병들이 식모살이를 하고 있으니 집에서 애지중지 키우고 공부시킨 자식을 군대보낸것이 식모살이나 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이 나라를 지키라고 보낸 군대인데 좀 어딘가 앞뒤가 안맞는것이 아닌가...
장교들은 이야기에 공감을 하지 않고 잘 모르는 소리라고 하겠지만 분명하게 군과 가정을 분리하자는것이다.
그랬을때 내부의 일들은 외부로 알려지지않을것이고 스스로가 제왕적 자아도취감을 느끼지 않게되는 첫 걸음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이러한 일들이 세상에 알려졌으니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는 국방장관이 잘 개혁을 하리라 생각된다
그밥에 그나물이 아닌 가제는 게편이 아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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